아시아의 역사

응인의 난부터 전국시대까지, 하극상(게코쿠조)의 시대는 어떻게 열렸나

전국시대의 역사를 본격적으로 살펴보기에 앞서, 무로마치 막부 성립부터 응인의 난(應仁の亂)까지의 흐름을 간단히 짚어보겠습니다.

겐무 신정의 붕괴와 무로마치 막부의 성립

가마쿠라 막부가 멸망한 뒤, 고다이고 천황(後醍醐天皇)은 겐무 신정(建武の新政)을 개시했습니다. 그러나 이 정권은 공가(公家, 귀족) 중심의 정책을 추진했기 때문에 무사(武士) 계급의 불만이 커져 갔습니다.

이에 반발한 아시카가 다카우지(足利尊氏)가 고다이고 천황에게 반기를 들면서 반란이 곳곳에서 일어났고, 겐무 신정은 결국 붕괴하고 말았습니다. 다카우지는 다른 천황을 옹립하여 무로마치 막부를 열었습니다. 그러나 고다이고 천황 역시 요시노에 새로운 조정을 세웠는데, 이것이 바로 남조(南朝)입니다. 이렇게 북조와 남조가 대립하는 남북조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남북조 통일과 무로마치 막부의 전성기

56년에 걸친 남북조의 대립 끝에, 무로마치 막부 제3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미쓰(足利義満)가 마침내 남북조 통일을 실현합니다. 이를 계기로 무로마치 막부는 전성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요시미쓰는 그동안 강성했던 규슈 지역을 평정하고, 명(明)과의 무역(겐코 무역)을 시작하는 등 정치·경제의 기반을 탄탄히 다졌습니다.

그러나 요시미쓰 사후에는 강력한 슈고 다이묘(守護大名)들이 세력을 키우며 막부에 압박을 가하기 시작합니다. 한편 연이은 기근과 고리대금에 시달리던 지방의 농민과 무사들은 막부에 덕정(德政, 빚 소각)을 요구하는 도쿠세이 잇키(덕정 일기)와 츠치 잇키(토기 일기)를 자주 일으켰습니다.

가마쿠라 시대부터 강력한 무사들이 많이 거주하던 간토 지역을 감시하기 위해 가마쿠라 부(鎌倉府)가 설치되었지만, 이곳 역시 여러 전란이 벌어진 땅이었습니다.

가마쿠라 부의 수장은 가마쿠라 공방(鎌倉公方)이라 불렸는데, 이들은 종종 지역 유력 세력들을 규합하여 막부와 대립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아시카가 요시미쓰 사후 유력 다이묘들이 하나둘 세력을 확장하면서, 쇼군 가문의 통제력은 점차 약화되어 갔습니다.

무로마치 막부의 쇠퇴와 응인의 난

무로마치 막부 제8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마사(足利義政)는 문화적으로는 큰 업적을 남겼지만 정치에는 무관심했습니다. 대신 그의 아내 히노 도미코(日野富子)가 정치에 적극 개입하면서 뇌물 수수가 빈번해졌고, 막부 정치는 극도로 혼란스러워졌습니다.

한편 무사 사회가 성숙하면서 장자 상속제가 정착하게 되고, 유력 영주들의 가독(家督) 상속 분쟁이 각지에서 벌어집니다. 수호 다이묘의 필두였던 시바(斯波)·하타케야마(畠山) 가문에서도 후계자 분쟁이 일어났고, 막부의 중신이기도 했던 호소카와(細川)와 야마나(山名) 두 가문의 대립으로 긴장감이 한층 고조되었습니다.

더욱이 쇼군 가문에서도 문제가 터집니다. 요시마사에게 한동안 자식이 없자 동생 요시미(義視)가 차기 쇼군으로 내정되어 있었는데, 히노 도미코가 아들 요시히사(義尚)를 낳으면서 두 파벌 사이에 가문 분쟁이 불거진 것입니다.

여기에 호소카와 가문과 야마나 가문이 각각 개입하면서, 동군과 서군으로 나뉘어 싸우는 응인의 난으로 치닫게 됩니다.

응인의 난 이후, 하극상의 시대로

응인의 난이 끝난 뒤에도 막부의 권위는 크게 실추되었고, 각지에는 전란의 불씨가 남아 있었습니다.

아시가루(足軽) 등이 신사와 사원에 방화를 일삼으면서 교토는 완전히 황폐화되었습니다. 그래서 현재 교토에 있는 신사·사원들은 대부분 응인의 난 이후에 재건된 것으로, 역사적으로 보면 비교적 새로운 편이라고 합니다.

한편 가마쿠라 막부의 옛터였던 간토 지역에서는 중앙에 대한 반란과 내분이 계속되었습니다.

응인의 난 이후에는 다이묘들 간의 전투뿐 아니라 토기 일기(土一揆)도 각지에서 빈번하게 일어났습니다.

야마시로국(山城国)에서는 하타케야마 가문의 내분이 계속되는 가운데 국인(国人)들의 소요가 일어나, 국인과 농민에 의한 자치 운동도 전개되었습니다.

이러한 혼란을 틈타 잇슈종(一向宗)의 렌뇨(蓮如)는 각지에서 신도 수를 늘리는 데 성공했고, 강력한 종교 조직을 구축한 잇슈종을 중심으로 호쿠리쿠 지방을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 잇코 잇키(一向一揆)가 빈번하게 일어났습니다.

이렇게 응인의 난을 기점으로, 신분이나 가문보다 실력이 더 중요시되는 하극상(下剋上, 게코쿠조)의 시대가 열립니다. 이후 100년 이상 지속될 전국시대의 막이 오르는 순간입니다.

아시카가 요시마사에서 전국시대까지의 흐름 한눈에 보기

전국시대는 무로마치 시대와 시기가 겹쳐 있어 이해하기 어려운 면이 있습니다. 따라서 무로마치 막부 성립부터 전국시대 개막까지의 흐름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유력 다이묘 가문의 상속 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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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군 가문의 가독 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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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소카와·야마나의 대립으로 응인의 난 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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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의 황폐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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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부 권위의 상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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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지에서 전란 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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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기 일기·국일기 빈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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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극상으로 인한 전국시대 개막…

이것이 무로마치 막부 성립부터 전국시대 개막까지의 간략한 흐름입니다.

전국시대는 오다 노부나가 등 유명 무장들의 시대라고만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전국시대를 세 시기로 나누어 기억하면 훨씬 이해하기 쉽습니다.

전국시대의 3단계 구분

  • 초기: 응인의 난 ~ 오케하자마 전투
  • 중기: 오다 노부나가의 대두 ~ 혼노지의 변
  • 후기: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천하 통일 ~ 세키가하라 전투

특히 전국시대 초기에는 다양한 세력과 인물이 얽혀 있어 이해하기가 더욱 어렵습니다. 먼저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한 뒤 각 사건을 하나씩 이해해 나가면 훨씬 수월할 것입니다.

다음 글부터는 각 사건의 세부 내용을 하나씩 깊이 있게 다루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