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역사

중세 인도의 지역 왕조 총정리: 팔라·세나·카슈미르 왕조의 흥망성쇠

팔라 왕조

벵골의 팔라 왕조는 8세기 중반에 건국되었습니다. 다르마팔라(Dharmapala)의 살렘푸르 비문에 따르면, 벵골 백성들은 고팔(Gopal)이라는 인물을 통치자로 추대했으며, 그가 팔라 왕조 통치의 기초를 마련했다고 전해집니다. 고팔은 오단타푸리(Odantapuri)에 비하라(사찰)를 세웠습니다.

다르마팔라의 재위 기간에는 불교 학문의 최고 중심지 중 하나였던 비크라마실라 대학(Vikramshila University)이 설립되어, 당시 불교 교육과 문화 발전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데브팔라(Devapala)는 프라티하라 왕조의 강력한 군주 미히라보자(Mihirabhoja)를 격파하며 왕조의 위상을 높였습니다. 또한 샤일렌드라(Shailendra) 왕조의 왕은 날란다 대비하라(Nalanda Mahavihara)에 기증하기 위해 5개 마을을 요청하기도 했는데, 이는 팔라 왕조의 국제적 영향력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아랍 여행자 술레이만(Suleiman)은 팔라 왕조를 프라티하라 왕조와 라스트라쿠타 왕조보다 더 강력하다고 평가했으며, 팔라 제국을 '루하마(Ruhama)'라 불렀습니다. 한편 램팔라(Rampala)의 통치 말기에는 카이바르타(Kaivarta) 계급의 대규모 반란이 일어나 왕조에 큰 타격을 입혔습니다.

세나 왕조

팔라 왕조의 쇠약함을 틈타 사만타 세나(Samanta Sena)가 벵골에서 세나 왕조를 개창했습니다. 그중 발랄 세나(Ballala Sena)는 세나 왕조의 가장 현명한 통치자로 평가받으며, 『단사가르(Danasagar)』와 천문학을 다룬 『아드부트사가르(Adbhutasagar)』를 저술한 학문적 군주였습니다.

락슈만 세나(Lakshmana Sena)의 궁정은 문화적으로 매우 융성하여, 『기타고빈다(Gita Govinda)』의 작가 자야데바(Jayadeva), 『파완두트(Pavanaduta)』의 작가 도이(Dhoyi), 그리고 『브라만 사르바스바(Brahman Sarvasva)』의 저자 할라유다(Halayudha) 등 뛰어난 학자와 시인들이 활동했습니다. 특히 할라유다는 락슈만 세나의 판관이자 수상(재상)을 맡았습니다. 그러나 1202년, 락슈만 세나의 재위 중에 바흐티야르 킬지(Bakhtiyar Khilji)가 벵골을 침공하면서 세나 왕조는 급속히 몰락의 길을 걷게 됩니다.

카슈미르의 왕조들

칼하나(Kalhana)의 『라자타랑기니(Rajatarangini, 1150년경)』는 카슈미르의 고대 역사를 체계적으로 기술한 귀중한 사서입니다. 카르코타(Karkota) 왕조는 627년 두를라바르다나(Durlabhavardhana)에 의해 건립되었으며, 라리타디티아 무크타피다(Lalitaditya Muktapida, 약 724~760년)는 이 왕조의 가장 유명한 군주였습니다. 『라자타랑기니』는 그의 정복 사업과 승전 기록을 상세히 전하고 있으며, 그는 오늘날까지도 남아 있는 마르탄드(Martand) 태양신전을 건설했습니다.

우트팔라(Utpala) 왕조의 창건자는 아반티바르만(Avantivarman)으로, 그는 아반티 도시를 건설하고 왕조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그의 신하 수야(Suyya)는 관개용 운하를 건설하여 카슈미르의 농업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습니다. 980년부터 우트팔라 왕조의 디다 여왕(Queen Didda)은 국가의 안정과 평화를 유지했지만, 잔혹하고 교활한 성품으로도 악명이 높았습니다. 1003년 그녀가 사망한 후 상그라마라자(Sangramaraja)가 즉위하며 로하라(Lohara) 왕조의 기초를 놓았습니다.

이후 하르샤(Harsha)가 왕위에 올랐고, 이 시대에 활동한 시인이 바로 『라자타랑기니』의 저자 칼하나입니다. 그의 서술은 이 왕조의 마지막 군주인 자이 싱(Jai Singh)에서 끝을 맺습니다. 그리고 1339년, 샤 미르(Shah Mir)가 카슈미르에서 이슬람 통치를 확립하며 긴 힌두 왕조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