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인도 독립운동에서 비하르(Bihar) 여성들이 남긴 위대한 기여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간디의 등장 이후부터 1942년 '인도 떠나라 운동'까지, 이름 없이 희생한 수많은 여성들의 발자취를 함께 살펴봅니다.
함께 읽으면 좋은 글
- 컴퓨터에 관한 일반 상식
- 제곱과 제곱근에 관한 정보
- 인도의 주요 호수, 강, 폭포 및 토양 정보
- 인도의 수상·항공·철도 교통 정보
- 불교와 석가모니 붓다 관련 정보
- 세계 최초에 대한 질문과 답변
- 인도 최초에 대한 질문과 답변
- 시험 준비를 위한 필수 문제와 정답
독립운동에서 빛난 비하르 여성들의 기여
간디의 도래와 여성들의 각성 (1917년)
1917년 마하트마 간디가 비하르에 도착하면서 독립운동에 참여하는 여성들의 수가 눈에 띄게 늘어났습니다. 카스투르바 간디의 고무 속에서 사랄라 데비, 프라바바티 데비, 라지반시 데비, 수니타 데비, 라디카 데비 등 여성 지도자들이 앞장섰고, 1919년경에는 비하르 전역의 여성들 사이에 독립에 대한 열망이 널리 확산되었습니다.
불매 운동과 스와데시 장려 (1920년대)
사랄라 데비는 1921년 웨일스 왕세자의 인도 방문을 보이콧하는 불매 운동을 이끌었습니다. 파트나의 C. C. 다스 부인과 우르밀라 데비는 독립운동 과정에서 실로 자수정(방직기)과 국산품 장려 활동에 적극 참여했습니다.
1921년 간디가 데쉬반후 기금(Deshbandhu Fund) 모집을 위해 비하르를 방문했을 때, 이곳 여성들은 보석까지 내놓으며 성금을 헌납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자야프라카시 나라얀의 아내인 프라바바티 데비가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소금 운동에 나선 용감한 여성들 (1930년)
소금 운동(민중 불복종 운동)에서도 비하르 여성들은 뜨거운 열정으로 참여했습니다. 샤일발라 라이 부인의 격앙된 연설에 감명받은 산탈파르가나스 지역의 여성들은 소금법을 폐쇄적으로 거부했습니다. 샤하바드 지구의 람 바하두르 변호사의 아내는 사사람(Sasaram) 경찰서 앞에서 직접 소금을 만들어 법을 어기기도 했습니다.
하자리바그의 사라스와티 데비와 사드나 데비는 소금법 위반으로 6개월형을 선고받았고, 기리디흐(Giridih)의 미라 데비 역시 체포되었습니다.
파트나에서는 하산 이맘 부인과 빈디아바시니 데비의 지휘 아래 여성들이 외국 옷 가게 앞에서 성공적인 시위를 벌였습니다. 당시 파트나 총독 관리(Collector)는 이들을 막기 위해 대규모 여성 경찰 병력을 배치해야 했습니다. 한편 멍거(Munger)의 샤 무함마드 주베어 부인은 명문 가문 출신 무슬림 여성으로서 독립운동에 몸담았습니다.
산탈파르가나 지구의 운동은 사드나 데비의 지도 아래 진행되었습니다. 1931년 3월 23일, 사르다르 바갓 싱·라주구루·수크데브의 사형 선고에 항의하는 대규모 집회가 아라(Arrah)에서 열렸으며, 쿠숨 쿠마리 데비가 이 집회를 주재했습니다. 1933년 1월 4일 간디와 다른 지도자들이 체포된 이후에도 비하르에서는 파업과 시위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1933년 1월 4일은 비하르에서 '간디 체포의 날'로 기념되었습니다. 라젠드라 프라사드 박사의 아내 라지반시 데비와 찬드라바티 데비를 포함한 여성들이 1월 26일 독립기념일을 기념하다 파트나에서 체포되었으며, 라주지 데비와 찬드라바티 데비는 1년 6개월의 징역형을 받았습니다.
개인 불복종 운동과 카디 운동 (1941년)
1941년 간디가 개인 불복종 운동(Individual Satyagraha)을 전개하자 비하르 여성들도 이에 호응하며 불복종 투쟁을 벌였습니다. 또한 비하르의 카디(Khadi, 수공예 직물) 운동에도 여성들이 적극 가담했는데, 사랄라 데비, 사비트리 데비, 릴라 싱, 샤피 부인, 샤르다 쿠마리, 빈디아바시니 데비, 프리야반다 데비, 바그와티 데비 등이 이 운동의 성공에 결정적으로 기여했습니다.
'인도 떠나라 운동'과 순국한 여성들 (1942년)
1942년 '인도 떠나라 운동(Quit India Movement)' 당시 비하르 여성들, 특히 차르카 위원회 소속 여성들은 8월 혁명의 불씨를 지피고 확산시키기 위해 온 힘을 다했습니다. 1942년 8월 9일에는 프라사드의 누이인 바그와티 데비의 지도 아래 파트나에서 대규모 여성 행진이 펼쳐졌습니다.
하자리바그에서는 사라스와티 데비가 여성들을 이끌다가 체포되었습니다. 그녀가 하자리바그에서 바갈푸르 감옥으로 호송되던 중 학생들이 습격해 그녀를 구출했지만, 이후 다시 체포되었습니다.
바갈푸르 지구에서는 마야 데비가 운동을 지휘했습니다. 고빈드푸르 마을 나르싱 고프의 아내 지리야바티는 영국 병사 16명을 사살한 용감한 인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샨티 데비는 1942년 8월 19일 참프란(Chapra)에서 열린 대규모 공개 집회를 주재했습니다.
참프란 말카차크의 고(故) 람 비노드 싱의 두 딸 샤르다와 사라스와티는 디그와라(Dighwara) 지역에서 삼색기를 게양한 죄로 각각 14년과 11년의 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산탈파르가나의 하리하르 미르다의 아내 비르지 데비는 경찰에 의해 살해당했습니다.
가야 지구의 피아리 데비 역시 경찰에 체포되었습니다. 바이샬리 지구 키쇼리 프라산 싱의 아내 수니티 데비와 바이쿤트 슈클라의 아내 라디카 데비는 남장을 하고 자전거를 타고 각처를 누비며 대중의 각성을 일깨우는 선전 활동을 펼쳤습니다.
바이샬리의 빈다 데비, 순국열사 풀레나 프라사드의 아내 타라 데비, 무자파르푸르의 바바니 메호트라, 바갈푸르의 람스와룹 데비, 멍거의 쿠마리 다튜트리 데비·지리야 데비·삼티야 데비, 샤하바드의 후이 쿠마리, 파트나의 수다 쿠마리 샤르마 등도 독립투쟁에 남다른 공헌을 했습니다.
1942년 '인도 떠나라 운동' 과정에서 수많은 여성들이 경찰의 총탄에 순국했습니다. 초드마라 마을의 비라지 마디야인 부인, 샤하바드 라사디 마을의 시브 고팔 두샤드의 아내 아켈리 데비, 멍거 로히아르 마을의 쿤와리 다튜리 데비 등이 대표적인 순국자입니다. 그 밖에 역사에 잘 알려지지 않은 비하르의 여성 지도자로는 샤르다 데비와 푸슈파 라니 무케르지 부인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