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역사

워싱턴 반중 폭력사태는 언제 발생했나? 1886년 시애틀 폭동의 모든 것

워싱턴 반중 폭력사태, 언제 발생했나?

미국 워싱턴에서 일어난 반중(反中) 폭력사태는 1886년 시애틀 폭동, 즉 '시애틀 학살'로 알려진 사건을 가리킵니다. 이 사건은 1886년 2월 7일, 당시 워싱턴 준주에 속해 있던 시애틀에서 발생했습니다.

사건의 배경과 경위

19세기 후반 미국 서부 지역에서는 중국인 이민자에 대한 배척 감정이 극에 달해 있었습니다. 철도 건설과 광산 개발에 동원된 수많은 중국인 노동자들은 저임금 노동으로 인식되면서 현지 백인 노동자들의 반발을 샀고, 이는 여러 차례의 폭력 사태로 번졌습니다.

1886년 2월 7일 아침, 시애틀의 무리가 중국인 거주지를 습격하여 주민들을 집에서 끌어내고 항구에 정박 중이던 증기선에 강제 탑승시켰습니다. 이 과정에서 약 200명 이상의 중국인 주민들이 도시에서 쫓겨났으며, 상당수가 산프란시스코행 배에 실려 강제 추방되었습니다.

정부의 대응과 사태 수습

폭력 사태가 확산되자 워싱턴 준주 주지사 왓슨 스퀴어(Watson Squire)는 계엄령을 선포했고, 연방군이 투입되며 질서가 회복되었습니다. 이후 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재판이 진행되었으나 유죄 판결은 극히 드물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역사적 의미

시애틀 폭동은 1885년 타코마 폭동, 같은 해 와이오밍 록스프링스 학살 등으로 이어지던 미국 서부의 반중국인 배척 운동의 연장선상에 있는 사건입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1882년 중국인 배척법(Chinese Exclusion Act)이 제정되었고, 미국 이민 역사상 최초로 특정 민족의 이민을 법적으로 제한하는 선례가 남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