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은 일본 봉건 시대에 어린 소년들이 사무라이(무사)가 되는 것을 동경하고 꿈꿨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제 역사는 조금 다릅니다. 사무라이 시대에 사무라이가 되는 것은 노력으로 이루어내는 '꿈'이 아니라, 태어나는 순간 결정되는 '신분'이었기 때문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운명, 세습 신분제
사무라이의 지위는 원칙적으로 세습직이었습니다. 즉, 사무라이 가문의 아들만이 사무라이가 될 자격을 가질 수 있었으며, 아버지의 무사 신분과 가문의 영지·봉록이 대대로 물려졌습니다. 일반 농민이나 상인의 자녀가 아무리 무술에 재능이 있고 성실하게 수련하더라도, 공식적으로 사무라이 계급에 오르는 길은 열려 있지 않았습니다.
엄격한 신분 질서, 사농공상
에도 시대 일본 사회는 흔히 사농공상(士農工商)이라 불리는 엄격한 신분 제도 아래 운영되었습니다. 사무라이는 최상위 계급인 '사(士)'에 속해 칼을 찰 수 있는 특권과 명예를 누렸지만, 반대로 농민·장인·상인 등 하위 계급은 어떤 방법을 쓰더라도 신분을 넘어서기 어려웠습니다. 이러한 고정된 위계 질서는 사회의 안정을 유지하는 장치였지만, 동시에 개인의 출세 가능성을 크게 제한했습니다.
극히 드문 예외는 존재했다
물론 완전히 닫힌 사회는 아니었습니다. 혼란스러운 전국 시대에는 하급 보병인 아시가루가 전공을 인정받아 사무라이로 승격하는 사례가 간혹 있었고, 농민 출신으로 시작해 천하를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 같은 걸출한 인물도 배출되었습니다. 그러나 에도 시대에 들어 평화가 정착하고 신분 제도가 더욱 굳건해지면서, 이런 출세의 통로는 사실상 사라졌습니다.
결론
결국 사무라이 시대의 어린 소년들에게 사무라이가 되는 것은 '이루고 싶은 꿈'이라기보다, 부모에게서 물려받는 신분이자 피할 수 없는 운명에 가까웠습니다. 사무라이의 아들은 처음부터 사무라이로 살아갈 준비를 했고, 그 외의 소년들은 애초에 그 길에 설 수 없었습니다.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소년의 사무라이 꿈'은 오히려 후대가 만들어낸 낭만적 이미지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