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의 역사

달러 외교의 창시자, 미국 제27대 대통령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는 시어도어 루스벨트와 우드로 윌슨 사이에 끼어 존재감이 옅은 대통령으로 여겨지곤 합니다. 그러나 그가 주창한 '달러 외교'는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외교 노선과는 정반대에 서 있는 것이었고, 미국 외교사에 지대한 영향을 남겼습니다.


또한 일본에서는 가쓰라-태프트 협정의 서명자로서 그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대통령이 되기까지의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는 1857년 오하이오주에서 태어났습니다. 남북전쟁 이후 미국 대통령 중에는 오하이오 출신이 압도적으로 많은데, 흥미롭게도 화려한 이미지의 대통령은 의외로 드문 편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변호사로 활동했으며, 율리시스 그랜트 대통령 밑에서 육군장관을 지낸 인물이었습니다.


윌리엄은 예일대학교를 졸업한 뒤 신시내티 로스쿨에서 변호사로 커리어를 시작했습니다. 참고로 그는 예일대 재학 당시 성적 순위 2위를 기록한 우수한 학생이었다고 합니다.


카운티 검사와 판사 등을 역임한 윌리엄은 벤저민 해리슨 대통령 시절 역대 최연소 연방 검찰총장(Solicitor General)으로 임명되었으며, 1896년부터는 신시내티 대학교에서 법학 교수로 재직했습니다.


미국-스페인 전쟁 이후에는 필리핀 총독으로 부임했고, 1904년에는 아버지처럼 시어도어 루스벨트 행정부의 육군장관으로 임명되었습니다. 가쓰라-태프트 협정은 바로 이 무렵 체결된 것입니다.


이후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자신의 후계자로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를 지명했고, 덕분에 태프트는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여 미국 제27대 대통령으로 취임하게 됩니다.

미국 제27대 대통령

달러 외교의 창시자, 미국 제27대 대통령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는 기본적으로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정책 노선을 계승할 의사를 갖고 있었습니다. 독점 규제법 제정, 정부 조직 개혁, 우편 사업 개선, 경제·효율성 위원회 설치, 미국 헌법 수정 제16조 개정 등 다양한 분야에 손을 뻗었으며, 내정 문제에서는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노선을 충실히 이어받았습니다.


그러나 외교에서는 강경한 '빅 스틱' 외교로 유명했던 시어도어 루스벨트와 달리, '달러 외교'라 불리는 새로운 노선을 펼쳤습니다.


달러 외교란 군사력이 아닌 경제력으로 라틴아메리카를 장악하고, 중국의 문호를 개방하는 것을 목표로 한 외교 정책입니다. 중국과 관련해서는 독일·프랑스·영국·미국 4개국이 청나라에 대한 차관을 공동으로 제공하는 이른바 '4개국 차관 협약'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이에 큰 불만을 품었습니다. 배경에는 중국 진출을 노리던 일본과 러시아의 존재가 있었는데, 포츠머스 조약에서 양국을 중재했던 루스벨트 입장에서는 자신이 쌓아온 성과가 짓밟히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다음 대선에서 시어도어 루스벨트 본인이 직접 출마하게 되었고, 이는 공화당 표 분열로 이어져 결국 민주당의 우드로 윌슨이 당선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퇴임 후의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

임기를 마친 후 윌리엄은 세계 평화 실현을 위해 활동을 이어갔으며,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워런 하딩 대통령의 임명으로 연방 대법원장에 취임하여 1930년 사망할 때까지 그 자리를 지켰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