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의 역사

스페인의 아메리카 식민 지배: 정치·경제·사회 구조의 근본적 변화

스페인의 아메리카 식민지화는 이 땅에 거주하던 사회들의 정치적·경제적·종교적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은 역사적 과정이었다.

스페인 사람들은 아메리카 대륙에 새로운 종교와 언어, 그리고 새로운 경제·사회 질서를 도입했다. 반대로 유럽으로는 감자, 옥수수, 초콜릿 등 미지의 생산품들이 전해졌으며, 알려진 세계의 경계는 영원히 확장되고 재편되었다.

아메리카에서의 스페인 식민 지배

정복 이후에는 아메리카 영토를 실질적으로 점유하는 일이 필요했다. 국왕들은 자신의 존재를 정당화하기 위해 더 많은 지역과 시장을 장악해야 했고, 동시에 가톨릭 신앙을 확장하고자 했다.

정치 권력은 신앙의 확산을 보장했고, 가톨릭 교회는 영토 점령을 합법화했다. 부르주아지는 왕의 이름으로 타인의 재산을 차지하는 데 자금을 댔다.

카피툴라시온(Capitulación)은 이러한 이익 집행을 가능하게 한 문서였다. 이 문서에는 새로운 영토 점령에 참여하는 각 당사자의 의무가 명시되었으며, 사용할 자본, 원정의 기본 조건, 왕실과 개인이 각각 부담할 금액 등 세부 사항도 규정되었다.

스페인 식민지의 경제

스페인의 아메리카 식민 지배: 정치·경제·사회 구조의 근본적 변화

아메리카에 정착한 스페인 사람들은 오랜 법과 질서로 조직되고 통치되던 토착 사회들과 마주하게 되었다. 식민 지배측은 엔코미엔다(encomienda) 같은 자체 제도를 만드는 한편, 미타(mita)처럼 기존의 토착 관습을 활용해 원주민 노동력을 착취했다.

엔코미엔다(Encomienda)

엔코미엔다는 카스티야 왕국에서 시행되던 제도로, 인디오스(아메리카)에 맞게 조정되어 적용되었다. 이 제도는 스페인 귀족인 엔코멘데로(encomendero)가 특정 원주민 집단에게 노동이나 물품 형태로 세금을 걷을 수 있게 했다. 그 대가로 엔코멘데로는 그들을 복음화하고 보호하며 방어할 의무를 졌다.

엔코미엔다는 상속은 가능했지만 영구적인 것은 아니었다. 많은 엔코멘데로들이 저지른 학대 행위로 인해 여러 수도회가 왕에게 항의하기에 이르렀다. 실제로 스페인 왕실은 제도 시행 약 50년 후 이를 폐지하려 시도했고, 이는 부왕령 여러 곳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원주민들 스스로도 이 제도에 반기를 들었다. 오늘날 볼리비아 지역에서 원주민 바르톨리나 시사(Bartolina Sisa, 1750~1783)가 이끈 반란이 대표적인 사례다.

미타(Mita)

주로 페루 부왕령에서 식민 지배측은 잉카 제국이 만든 미타 제도를 이용해 원주민 노동력을 자신들의 목적에 맞게 동원했다.

미타는 원래 남성 인구가 잉카에 제공하는 봉사 제도였다. 일반적으로 신전이나 도로 건설을 돕는 것이었으며, 그 대가로 보호와 신들에 대한 제물 혜택을 받았다.

스페인 사람들은 페루 부왕령 전역에서 같은 개념을 활용했다. 원주민 부족들은 '레독시온(reducción)'이라 불리는 정착지에 강제로 모여 거기서 교리 교육을 받았고, 이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미타를 수행해야 했다.

미타는 대개 인구 일부를 1년간 은광 개발에 동원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광산 노동이 규제되어 있었고 3주만 근무하면 된다는 규정이 있었지만, 현실의 가혹한 노동 조건 속에서 많은 원주민들이 목숨을 잃었다.

스페인령 아메리카의 통치 체계

스페인의 아메리카 식민 지배: 정치·경제·사회 구조의 근본적 변화

광활한 정복지를 통제하기 위해 스페인은 처음에 왕실에 직속된 두 개의 부왕령, 즉 누에바 에스파냐 부왕령과 페루 부왕령을 설립했다. 여기에 쿠바 총독부, 푸에르토리코 총독부, 산토도밍고 총독부도 함께 설치되었다.

이들 영토는 스페인 왕국의 연장선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부왕령(virreinato)'이라는 명칭이 붙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본국은 식민지를 통치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기구들을 두었다.

상거래원(Casa de Contratación)

인디오스(아메리카)로 이주해 정착하는 모든 사람을 등록하는 기관이었다. 물품 기록, 항해사와 항해 해도의 관리를 담당했으며 사법 기능도 수행했다. 처음에는 세비야에, 후에는 카디스에 소재지를 두었다.

인디언스 평의회(Consejo de Indias)

아메리카 영지에 관한 사법, 경제, 심지어 전쟁에 이르는 결정에서 왕을 보좌하는 기구였다.

아우덴시아(Audiencia)

부왕령에 설치된 법원으로, 거주민들이 저지른 범죄를 심판했다.

부왕령과 총독부

18세기 국왕 카를로스 3세(1716~1788)가 추진한 계몽주의 개혁으로 부왕령은 네 개로 분할되었고, 더 많은 총독부가 신설되었다. 그 목적은 식민지 행정을 개선하는 방안을 찾는 것이었다.

부왕령(Virreinatos): 영토가 넓고 인구가 많아 스페인 왕실에 가장 큰 수익을 안겨준 지역으로, 부왕(virrey)이 다스렸다. 누에바 에스파냐, 페루, 누에바 그라나다, 라플라타 부왕령이 있었다.

총독부(Capitanías Generales): 원주민과의 갈등이 심하거나 해적 공격의 표적이 되던 지역에 설치되었다. 과테말라(현 과테말라, 온두라스, 엘살바도르, 코스타리카 포함), 쿠바, 베네수엘라, 칠레, 산토도밍고, 푸에르토리코가 해당되었다.

식민지의 정치 직책

식민지는 군주가 직접 임명한 관리들에 의해 운영되었다.

  • 부왕(Virrey): 이 체계 내 최고 직위로, 국왕이 직접 임명한 귀족이 맡았다. 최대 권한을 보유했으며 일부 총독부는 부왕의 관할에 속했다.
  • 총독(Capitán General): 각 총독부의 책임자에게 쓰인 칭호였다.
  • 주지사(Gobernador): 부왕이나 총독을 보좌하여 영토를 관리했다.
  • 카빌도(Cabildo): 토지 소유주와 성직자를 포함한 사회 유력 인사들로 구성된 일종의 평의회로, 같은 이름의 건물에서 회의를 열었다.

히스패닉 식민지의 사회

스페인의 아메리카 식민 지배: 정치·경제·사회 구조의 근본적 변화

스페인령 아메리카의 식민지 사회는 피부색으로 구분되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인종 간 결합이 늘어나자 혼혈의 정도보다 출생지가 더 중요해지기도 했다. 식민지 사회의 주요 계층은 다음과 같다.

차페톤(Chapetón)

히스패닉 식민지에 새로 도착한 스페인 본토 출신들을 일컫는 말이다. 이들은 부왕, 총독, 주지사, 시장 또는 인텐단테(intendente), 주교와 대주교, 각 수도회의 상급자 등 고위직을 독점했다.

그러나 이들의 특권은 세습되지 않았다. 본국 밖에서 태어난 자녀는 크리오요(criollo)로 분류되어 부모와 같은 사회적 지위를 누릴 수 없었다.

크리오요(Criollo)

아메리카에서 태어난 스페인인의 자손들이었다. 고위직에 오를 수는 없었지만 카빌도에는 참여할 수 있었고 안정된 사회적 위치를 누렸다.

크리오요들은 변호사, 상인 등 전문직에 종사했을 뿐 아니라 엔코멘데로, 광산업자, 농업인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포르투갈어 용법과 달리 스페인어의 criollo는 흑인을 의미하지 않는다. 스페인 왕국이 아닌 아메리카에서 태어난 백인을 가리키는 말이다.

노예화된 흑인들

노예화된 아프리카인들은 스페인 투자자들이 참여한 영국과 포르투갈의 노예상들에 의해 끌려왔다.

노예들은 카리브해 지역에서 몰살당한 원주민 인구를 대체할 노동력으로 쓰이며 사탕수수, 담배, 코코아, 면화 등의 작물 재배에 강제 동원되었다.

흑인 노예제는 스페인령 아메리카 전역에서 균일하지 않았다. 카리브해 지역에서는 광범위하게 사용되었지만, 예컨대 페루 부왕령에서는 그 강도가 덜했다. 반면 리오데라플라타 지역에서는 그 존재감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원주민들

스페인의 식민 지배는 토착 민족들의 기존 생활 방식의 소멸을 의미했다.

경제는 외부 시장을 향해 재편되었고, 원주민들은 은·금·수은 광산에서 주로 일했으며 가사 노동과 농업에도 동원되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고유 언어는 카스티야어(스페인어)로 대체되었고 종교는 가톨릭으로 바뀌었다. 동시에 토착 신앙과 기독교가 뒤섞인 새로운 믿음도 형성되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도 일부 관습은 남았고, 어떤 것들은 융합되어 새로운 삶의 방식과 사고를 낳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영원히 잃어버린 것들도 적지 않았다.

메스티소(Mestizo)

식민지 사회에서는 피부색이 사회적 서열을 결정하는 기준이었다.

식민지 관습에 따르면 스페인인과 원주민 여성의 결합에서 메스티소가 태어났다. 그럼에도 메스티소들은 백인 문화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에 어느 정도 수용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원주민, 백인, 흑인 사이의 결합이 늘어나며 기존 어느 범주에도 속하지 않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 결과 각 결합 유형마다 고유한 명칭들이 등장했다. 물라토(mulatto), 토르나아트라스(tornatrás), 모리스코(morisco), 로보(lobo), 삼바이오(sambaio), 코요테(coyote), 캄부조(cambujo), 차미소(chamizo) 등이 그 예다.

새로운 범주를 설정하는 방식이었지만, 여전히 각 메스티소의 신분은 모호했으며 피부색과 생활 방식이 얼마나 '백인적'인지에 따라 좌우되었다.

스페인이 식민 지배한 국가들

아메리카에서 스페인이 점령한 영토는 매우 광범위하다. 우루과이, 파라과이, 볼리비아, 아르헨티나, 칠레, 페루, 에콰도르, 콜롬비아, 베네수엘라, 파나마, 온두라스, 쿠바, 도미니카 공화국, 코스타리카, 니카라과, 과테말라, 멕시코가 대표적이다.

또한 스페인은 일부 카리브해 섬들을 개척했는데, 이곳들은 훗날 자메이카, 트리니다드 토바고, 과들루프, 세인트키츠 네비스 등 다른 식민 열강의 손에 넘어갔다.

나아가 오늘날 미국이라 불리는 땅의 상당 부분도 누에바 에스파냐 부왕령에 속해 있었다. 캘리포니아, 텍사스, 플로리다, 네바다, 콜로라도, 유타, 애리조나, 오리건, 뉴멕시코, 워싱턴 주와 아이다호, 몬태나, 와이오밍, 캔자스, 오클라호마, 루이지애나의 일부가 포함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