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혁명은 1959년에 일어난 게릴라 운동으로, 풀헨시오 바티스타(Fulgencio Batista)의 독재 정권을 전복시킨 사건입니다.
이 혁명은 쿠바에 사회주의 체제를 수립했으며, 카리브해의 이 섬나라를 소련과 정치·경제적으로 긴밀하게 연결시켰습니다.
역사적 배경
쿠바의 독립은 미국과 스페인 간의 전쟁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1898년 스페인이 패배하면서 미국은 이 섬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영향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미국 상원은 올리버 플랫(Oliver Platt) 상원의원의 법안을 승인했고, 쿠바인들은 헌법에 '플랫 수정조항'을 포함하도록 강요받았습니다. 이 조항은 정치적 불안정이 발생할 경우 미국이 개입할 권리를 부여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로써 미국의 쿠바에 대한 정치·경제·군사적 후견 통치가 시작되었습니다. 여기에는 1903년 섬 남부 관타나모에 117km² 규모의 영토를 할양받은 것도 포함되며, 이후 이 지역에는 해군 기지와 교도소가 건설되었습니다.
1950년대 쿠바 경제는 거의 전적으로 설탕 생산에 의존하고 있었으며, 제조업의 35%는 미국 자본이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미국은 토지, 관광, 카지노, 경공업 분야에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고, 쿠바 수입 물량의 약 80%가 미국산이었습니다.
혁명의 원인

1952년, 과거에도 섬을 통치한 적이 있는 전직 군인 풀헨시오 바티스타(1901~1973)가 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장악했습니다. 미국의 지원을 받은 바티스타는 부패하고 폭력적인 독재 체제를 구축했습니다.
1953년 7월, 변호사 출신 피델 카스트로(Fidel Castro)의 지도 아래 민주 세력들이 미국의 간섭과 바티스타 정부에 맞서 결집했습니다.
정권을 타도하기 위해 그들은 산티아고데쿠바의 몽카다 병영(Moncada Barracks)에 대한 결사 공격을 감행했습니다.
그러나 이 혁명 시도는 실패로 끝났고, 피델 카스트로는 투옥되었다가 2년 후 석방되어 멕시코로 망명했습니다.
하바나 정권 장악

망명지 멕시코에서 피델 카스트로는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Ernesto 'Che' Guevara), 카밀로 시엔푸에고스(Camilo Cienfuegos), 동생 라울(Raúl) 등 혁명가들과 수많은 자원병의 지원을 받아 게릴라 부대를 조직했습니다.
1956년, 그들은 요트 그란마(Granma) 호를 타고 쿠바에 상륙했습니다. 정부군과의 첫 전투 이후 생존자들은 시에라마에스트라(Sierra Maestra) 산맥의 정글 깊숙이 들어가 게릴라전을 펼쳤고, 농민들의 지원 속에 세력을 빠르게 확장했습니다.
이 당시 피델 카스트로의 사상은 자유주의적 교육을 받은 민족주의 민주주의자의 것이었으며, 마르크스주의를 받아들인 것은 그 이후의 일이었습니다.
1958년, 바티스타 독재가 붕괴 직전에 몰렸다는 것을 파악한 미국은 쿠바 정부에 대한 군사 지원을 중단했습니다. 미국은 오히려 커져가는 혁명 세력의 지도부를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움직이려 했습니다.
1959년 1월 1일, 연이은 군사적 승리와 여러 도시 점령 끝에 체 게바라와 카밀로 시엔푸에고스(1932~1959)가 하바나에 입성했습니다.
풀헨시오 바티스타는 비행기를 타고 도미니카 공화국으로 도피했습니다. 피델 카스트로는 1월 8일 수도에 도착했고, 대규모 환영 행렬 속에서 개선장군으로 맞이받았습니다.
피그만 침공
1961년 4월 16일 연설에서 피델 카스트로는 쿠바가 사회주의 국가가 될 것이라고 세계에 공식 선언했습니다.
바로 다음 날, CIA의 훈련을 받은 쿠바 출신 망명자들이 섬 남부의 피그만(Bay of Pigs) 지역을 통해 침공을 감행했습니다.
이 작전은 새로 취임한 미국 대통령 존 F. 케네디(1917~1963)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지만, 미군의 직접 개입은 없었습니다.
침공은 쿠바군에 의해 완패했고, 침략자 대부분은 항복 후 체포되어 처형되었습니다. 다만 카스트로는 미국 기업들과 합의를 맺어 투자 보상을 조건으로 일부 포로가 미국으로 송환될 수 있도록 했습니다.
혁명의 결과

혁명 정부의 첫 번째 조치 중 하나는 혁명을 피해 섬을 떠난 미국인 및 쿠바인의 자산을 몰수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미국은 1960년 경제 금수 조치로 대응하며 자국과 쿠바 간의 무역을 전면 금지했습니다.
이후 1960년대를 거치며 다음과 같은 조치들이 이어졌습니다.
- 1961년, 미국은 쿠바와의 외교 관계를 단절했다.
- 1962년, 냉전이 한창이던 시기에 쿠바는 '대륙 전역에 전복 활동을 확산시켰다'는 혐의로 미주기구(OAS)에서 추방되었다.
- 1965년, 피델 카스트로가 쿠바 공산당(PCC)을 창당했다.
- 국제적으로 고립된 쿠바는 소련으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기 시작했다.
쿠바 혁명과 사회주의로의 전환은 1960년대 세계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혁명의 성공에 고무된 라틴아메리카 좌파 세력은 무장 투쟁을 통한 집권이 가능하다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미국 입장에서 이 섬은 골칫거리였고, 그중 가장 심각한 사태가 1962년의 쿠바 미사일 위기였습니다. 혁명의 선례가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미국은 라틴아메리카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유지하고자 일련의 군사 쿠데타를 지원했습니다.
한편 체 게바라는 섬의 경제 시스템을 재편한 뒤, 피델 카스트로에게 혁명적 이상을 전 세계로 확산시킬 기회를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이렇게 체 게바라는 볼리비아로 향했지만, 1967년 그곳에서 암살당하고 말았습니다.
이후 쿠바는 앙골라, 카보베르데, 기니, 기니비사우, 에티오피아, 콩고, 알제리, 베냉 등 아프리카 국가들이 식민 종주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하도록 적극 지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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