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건국의 아버지들은 저마다 다양한 배경과 관점을 지닌 인물들이었습니다. 헌법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그들은 여러 핵심 쟁점을 놓고 의견이 크게 갈렸는데, 대표적인 논쟁 거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1. 강력한 중앙 정부 vs. 주 권리
건국의 아버지들은 연방 정부가 얼마나 많은 권한을 가져야 하고, 개별 주가 어느 정도의 자치권을 유지해야 하는지를 두고 의견이 나뉘었습니다. 알렉산더 해밀턴과 같은 이들은 강력한 중앙 정부를 주장한 반면, 패트릭 헨리와 같은 이들은 더 큰 주 권리를 옹호했습니다.
2. 대표성과 투표권
누가 투표할 수 있어야 하는지, 그리고 선출된 대표를 어떻게 뽑아야 하는지에 대한 이견도 컸습니다. 일부는 보통선거를 지지했지만, 다른 이들은 재산이나 자산 요건을 두는 방안을 선호했습니다. 또한 노예 신분의 사람들을 어떻게 대표할 것인지, 연방 의회 의석 배분을 위한 인구 조사에서 어떻게 계산할 것인지를 놓고도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으며, 이 과정에서 노예를 인구의 '5분의 3'로 치는 소위 '5분의 3 타협'이 성립되기도 했습니다.
3. 노예제
노예제는 건국의 아버지들 사이에서 가장 깊은 분열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토머스 제퍼슨과 같은 이들은 노예제와 자유·평등의 이념 사이의 모순을 인식했지만, 경제적 이해관계와 정치적 현실 앞에서 뾰족한 해결책을 찾지 못했습니다. 특히 남부 출신 인사들은 노예제를 적극적으로 옹호하며 노예 소유주의 이익을 보호하고자 했습니다.
4. 사법 심사(위헌 법률 심사)
또 다른 쟁점은 연방 대법원이 의회에서 통과된 법률을 위헌으로 판단할 권한을 가져야 하는지 여부였습니다. 알렉산더 해밀턴은 사법 심사 제도를 강력히 지지했지만, 토머스 제퍼슨 등은 이것이 '사법 독재'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하며 반대 입장을 취했습니다.
5. 권리 장전
권리 장전(개인의 기본권을 명문화한 조항)의 포함 여부 역시 중요한 논쟁거리였습니다. 제임스 매디슨과 같은 연방주의자 지도자들은 헌법 자체가 이미 개인의 권리를 충분히 보호한다고 주장했지만, 반연방주의자들은 정부의 권력 남용을 막기 위한 명시적인 보장을 강하게 요구했습니다. 결국 권리 장전의 채택은 양측의 타협으로 이루어진 결과물이었습니다.
이러한 의견 차이에도 불구하고, 건국의 아버지들은 서로 타협하고 합의에 도달함으로써 새로운 정부의 틀, 즉 미국 헌법을 완성해냈습니다. 1787년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제헌 회의에서 이루어진 그들의 숙의와 타협은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미국 통치 체제의 단단한 기초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