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의 역사

미국 대륙횡단철도는 왜 북부 노선이 아닌 42도선을 따라 건설되었을까?

흔히 미국의 대륙횡단철도가 북부를 통과하는 노선으로 건설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 철도는 남북보다 약간 북쪽에 위치한 북위 42도선을 따르는 중앙 노선으로 부설되었으며, 그 배경에는 당시 미국의 정치적·지리적 상황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1862년 태평양 철도법의 제정

1862년,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 시기의 미국 의회는 태평양 철도법(Pacific Railway Act)을 통과시켰습니다. 이 법은 동부에서 서쪽으로 진행하는 유니언 퍼시픽(Union Pacific)과 캘리포니아에서 동쪽으로 향하는 센트럴 퍼시픽(Central Pacific)이라는 두 철도 회사에 동서 해안을 하나로 잇는 철도 건설 특허를 부여한 것이 핵심 내용입니다. 국가적 통합과 서부 개발이라는 거대한 프로젝트가 공식적으로 시작된 순간이었습니다.

왜 중앙 노선이었을까?

태평양 철도법은 노선을 북부가 아닌 42도선을 따르는 보다 중앙에 가까운 경로로 명시했습니다. 남북전쟁 중이던 당시 상황에서 남부 노선은 정치적으로 설득력이 떨어졌고, 반면 42도선 부근은 이전부터 여러 차례 측량이 이루어져 지형 정보가 비교적 확보된 상태였습니다. 또한 산악 지형의 장애물이 상대적으로 덜하다는 점도 중앙 노선 선택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건설의 시작과 완공

공사는 1863년에 본격적으로 착수되었습니다. 두 회사는 서로를 향해 경쟁적으로 선로를 놓았고, 드디어 1869년 5월 10일 유타주 프러먼터리 섬에서 동서 양측의 선로가 연결되며 대륙횡단철도가 완성되었습니다. 이 역사적인 순간은 '황금 스파이크(Golden Spike)'를 박는 의식으로 기념되었으며, 대륙 횡단 여정이 수개월에서 며칠 수준으로 단축되는 등 미국 경제와 사회 전반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