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율리시스 S. 그랜트(Ulysses S. Grant) 장군이 게티즈버그 전투 이후 북군(연방군)의 지휘관으로 임명되었다고 알고 있지만, 이는 사실과 다릅니다. 그랜트가 북군 최고 사령부로 발탁된 결정적 계기는 1863년 7월 빅스버그(Vicksburg) 전투에서 거둔 승리였습니다.
빅스버그 전투와 그랜트의 부상
빅스버그 전역은 미시시피 강을 장악하기 위한 남북전쟁의 핵심 작전이었습니다. 그랜트는 수개월에 걸친 치열한 공방전 끝에 1863년 7월 4일 빅스버그를 함락시켰고, 약 3만 명에 달하는 남군 병력을 항복시키는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이 승리로 연방은 미시시피 강 전체를 통제하게 되었고, 남부동맹은 동부와 서부로 분단되는 치명타를 입게 됩니다.
흥미롭게도 같은 시기인 1863년 7월 초, 동부 전선에서는 조지 미드(George Meade) 장군의 지휘 아래 게티즈버그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즉, 두 전투는 거의 동시에 일어났지만 그랜트의 명성은 어디까지나 서부 전선의 빅스버그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링컨이 그랜트를 선택한 이유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은 잦은 교체에도 불구하고 승리를 가져오지 못하던 동부 전선 사령관들과 달리, 어떤 상황에서도 물러서지 않고 끝까지 싸우는 그랜트의 집요함에 큰 신뢰를 보냈습니다. 링컨은 "나는 이 사람을 놓아줄 수 없다. 그는 싸우는 사람이다(I can't spare this man — he fights)"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빅스버그 승리 직후 그랜트는 서부 전선의 군대에 대한 지휘권을 넓혀받았고, 이어진 채터누가(Chattanooga) 전투(1863년 11월)에서도 승리하며 명성을 굳건히 다졌습니다. 마침내 1864년 3월, 링컨은 그랜트를 북군 전체를 총괄하는 총사령관(General-in-Chief)으로 임명했습니다.
결론
정리하자면, 그랜트 장군의 지휘권 확대는 게티즈버그 전투가 아니라 1863년 7월의 빅스버그 전투 승리가 계기였으며, 그가 정식으로 북군 총사령관에 임명된 것은 그로부터 약 9개월 뒤인 1864년 3월의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