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의 역사

침입자들은 어느 도시를 공격했을까? 바이킹이 노린 유럽의 주요 도시들

8세기 말부터 11세기 중반까지 이어진 '바이킹 시대' 동안, 스칸디나비아 출신의 침입자들은 배를 타고 유럽 연안 곳곳을 기습했습니다. 그들의 공격 대상은 주로 해안 항구나 강을 통해 접근할 수 있는 도시였으며, 부와 보물이 모여 있는 수도원과 왕궁도 주요 표적이 되었습니다. 아래는 국가별로 바이킹에게 공격받았던 대표적인 도시들입니다.

잉글랜드

린디스판(Lindisfarne)

793년 성 커스버트 수도원이 있던 이 섬이 습격당한 사건은 바이킹 시대 개막을 알리는 상징적 사건으로 기록됩니다. 수도사들은 학살당하거나 노예로 끌려갔고, 이 소식은 유럽 전역에 충격을 주었습니다.

재로(Jarrow)

794년, 역사가 베다와 깊은 인연이 있는 유명 수도원의 도시 재로가 이어서 공격받았습니다. 다만 이번에는 현지의 저항에 부딪혀 지도자가 살해되는 등 큰 성과 없이 물러났습니다.

위트비(Whitby)

북해 연안의 위트비 수도원 역시 초기 바이킹 습격의 희생지가 되었습니다. 잉글랜드 북동부 해안의 수도원들은 방어가 취약해 반복적으로 약탈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프랑스

루앙(Rouen)

841년 세느 강변의 무역 중심지 루앙이 처음 약탈당했습니다. 이후 프랑크 왕국은 결국 911년 루앙 일대를 바이킹 지도자 롤로에게 할양하면서 노르망디 공국이 탄생하게 됩니다.

파리(Paris)

845년 바이킹 함대가 세느 강을 거슬러 올라 파리를 포위하고 막대한 은화를 몸값으로 받아갔습니다. 특히 885~886년의 파리 대공방전은 서유럽 중세사에서 가장 극적인 사건 중 하나로 남았습니다.

낭트(Nantes)

843년 성 요한 축일에 낭트가 기습당해 주교를 비롯한 많은 주민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루아르 강 하구에 위치한 덕분에 접근이 쉬웠고, 그만큼 반복적인 공격을 받았습니다.

독일

아헨(Aachen)

샤를마뉴 대제의 제국 수도였던 아헨조차 안전하지 않았습니다. 881년 바이킹이 황궁 인근을 약탈하며 프랑크 제국의 쇠퇴를 상징적으로 드러냈습니다.

쾰른(Cologne)

라인 강의 대도시 쾰른은 881년 바이킹에게 함락되어 크게 약탈당했습니다. 강을 통해 직접 접근할 수 있는 도시들은 방어에 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트리어(Trier)

882년 로마 시대부터 이어져 온 고도 트리어가 공격받아 심각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모젤 강변에 자리한 이 도시는 여러 차례 약탈을 반복적으로 당했습니다.

이탈리아

로마(Rome)

9세기 중반 비외른 아이론사이드와 하스테인이 이끄는 바이킹 함대가 지브롤터 해협을 넘어 지중해로 진출하면서 이탈리아 연안이 위협받기 시작했습니다. 로마 시내 자체는 완전히 함락되지 않았지만, 함대가 로마로 오인하고 공격한 루나(Luna)를 비롯해 주변 지역들이 약탈당했습니다.

밀란(Milan)과 파비아(Pavia)

860년경 바이킹은 롬바르디아 평야의 번영한 도시들인 밀란과 파비아를 공격해 약탈했습니다. 내륙 깊숙한 곳까지 침입이 이루어진 것은 당시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스페인

세비야(Seville)

844년 바이킹 함대가 과달키비르 강을 거슬러 올라 세비야를 점령하고 약탈했습니다. 이후 코르도바의 우마이야 정권은 해군을 강화해 이후의 공격을 성공적으로 격퇴했습니다.

코르도바(Córdoba)

알안달루스의 수도 코르도바도 844년 공격 대상이 되었으나, 잘 조직된 이슬람군의 방어로 큰 피해는 피할 수 있었습니다.

톨레도(Toledo)

타호 강 유역의 내륙 도시 톨레도 역시 바이킹의 공격 범위에 들었습니다. 이베리아 반도 침공 과정에서 여러 도시가 위협을 받았습니다.

마무리: 약탈을 넘어선 영향

바이킹의 공격은 단순한 약탈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잉글랜드 데인로(Danelaw)의 설립, 노르망디 공국의 건설, 동유럽에서의 키예프 루스 성립처럼 그들은 정착자이자 무역상, 국가의 창건자가 되기도 했습니다. 한편 유럽의 도시들은 이 시기를 거치며 성벽을 강화하고 해군력을 발전시키는 등 중세 국가 체제를 다지는 계기를 마련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