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4년 캔자스-네브라스카 법
1854년의 캔자스-네브래스카 법은 1820년의 미주리 타협을 폐지한 논란의 여지가 있는 법안이었습니다. 미주리 타협은 북위 36°30'를 자유주와 노예주 사이의 경계선으로 설정했습니다. 캔자스-네브라스카 법은 캔자스 준주 주민들이 자유주가 될 것인지 노예주가 될 것인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허용했습니다.
캔자스 투쟁
캔자스-네브래스카 법은 캔자스 준주에서 엄청난 폭력 사태를 초래했습니다. 노예 제도를 지지하는 정착민과 노예 제도를 반대하는 정착민들이 영토로 몰려들었고, 양측은 투표를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좌우하기를 희망했습니다. 폭력 사태는 빠르게 확대되었고, 이 지역은 "피 흘리는 캔자스(Bleeding Kansas)"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르컴튼 헌법
1857년 캔자스 주의 노예 제도를 옹호하는 입법부는 해당 지역에서 노예 제도를 허용하는 헌법 초안을 작성했습니다. 헌법은 매우 인기가 없었고 유권자들에 의해 거부되었습니다. Lecompton 헌법의 거부는 캔자스에서 더 많은 폭력을 초래했습니다.
남북전쟁
캔자스의 폭력사태는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던 노예제도를 둘러싼 더 큰 투쟁의 축소판이었습니다. 1861년에 시작된 남북전쟁은 노예제도 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졌습니다. 4년간 지속된 전쟁은 노예제도 폐지로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