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의 역사

1877년까지 재건을 끝내기 위해 결합된 국가적 문제와 태도는 무엇입니까?

1877년 재건의 종말은 조국통일 염원, 공화당의 쇠퇴, 민주당의 부상, 1877년의 타협 등 국민적 문제와 태도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남북전쟁 이후 미국은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크게 분열되었습니다. 공화당은 1861년부터 집권해 왔으며 헌법에 대한 재건 수정안을 추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러한 수정안은 아프리카계 미국인에게 투표권을 부여했으며, 남부 주에 대해 연방 정부에 더 많은 권한을 부여했습니다.

민주당은 공화당이 가져온 많은 변화에 반대했고, 공화당은 남부에서 힘을 얻기 시작했습니다. 1876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인 새뮤얼 J. 틸든(Samuel J. Tilden)이 대중 투표에서 승리했지만 선거는 논쟁의 여지가 있었고 결국 공화당은 자신들의 후보인 러더퍼드 B. 헤이스(Rutherford B. Hayes)의 승리를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1877년 타협에서 공화당은 남부에서 연방군을 철수하고 남부 주들이 자신들의 업무를 통제하도록 허용하는 데 동의했습니다. 이로 인해 재건이 사실상 끝났고 남부 주들은 짐 크로우 법(Jim Crow Law)과 같이 아프리카계 미국인을 차별하는 법을 통과시킬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