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0년 전후 미국이 겪은 극심한 남북 갈등, 이른바 '지역적 위기(sectional crisis)' 시기에 대다수 북부인들은 남부의 노예제도를 지지하지 않았습니다. 많은 이들이 도덕적·경제적 이유로 노예제에 반대했으며, 일부는 이 악습을 완전히 종식시키기 위해 폐지론(abolitionism)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그러나 북부의 반노예 감정이 곧 인종 평등에 대한 지지를 의미하지는 않았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실제로 많은 백인 노동자와 시민들은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자기 자리'에 머물러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이들은 학교와 대중교통 등 공공 영역에서의 인종 차별(분리 정책)을 옹호하거나, 해방된 흑인들을 아프리카로 이주시키자는 '식민지화(colonization)' 계획을 지지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결국 당시 북부 사회는 노예제의 확산에는 반대하면서도, 동시에 백인 중심의 기존 질서를 유지하려는 경향이 공존하는 모순적 태도를 보였습니다. 이러한 복잡한 여론은 1850년 타협안과 도망노예법을 둘러싼 논쟁 과정에서 뚜렷하게 드러났으며, 북부 내부의 입장 역시 결코 단일하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