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0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미국의 인구는 1,200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1790년에는 400만 명에 불과했으니, 불과 40년 남짓 사이에 세 배로 불어난 셈입니다.
인구와 영토가 급격히 팽창하던 이 격동의 시기에 대통령이 된 인물이 바로 앤드류 잭슨입니다.
1812년 전쟁과 인디언 전쟁의 '영웅'

미국 역대 대통령 가운데는 변호사 출신이나 전쟁 영웅이 많지만, 두 자질을 모두 갖춘 경우는 드뭅니다. 잭슨은 그 드문 예에 해당하는 인물입니다.
앤드류 잭슨은 미국 독립전쟁에 참전한 마지막 대통령입니다. 독립전쟁이 시작될 당시 그는 겨우 13세 소년이었고, 전쟁 중 포로로 잡혀 굶주림의 고통까지 겪으면서 영국군에 대한 강한 증오를 품게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전쟁이 끝난 뒤 그는 신발 장인 밑에서 일했고, 노스캐롤라이나 솔즈베리에서 법률을 공부한 뒤 오늘날의 테네시 지역에서 변호사로 활동했습니다. 1796년에는 연방 하원의원으로 선출되었고, 1798년부터 1804년까지는 테네시 주 대법원 판사를 지냈습니다. 한편 그는 100명이 넘는 흑인 노예를 부리는 대농장주이기도 했습니다.
1806년에는 결투에서 상대를 죽이기도 했습니다. 계기는 잭슨이 아직 다른 남성과 혼인 관계에 있던 여성 레이철과 결혼한 일이 지역 신문에 보도되면서 비난이 시작된 것이었습니다. 이를 조롱한 찰스 디킨슨과의 결투 끝에 잭슨은 상대를 사살했지만, 명성에 큰 타격을 입고 한동안 무대에서 물러나야 했습니다.
잭슨이 다시 무대에 오른 것은 1812년 전쟁 때부터였습니다. 그는 영국과 손잡은 원주민 부족들을 철저히 진압하며 이름을 날렸고, 특히 인디언의 땅을 노리던 서부에서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당시 미국 사회는 이런 행위를 영웅적인 업적으로 받아들였지만, 오늘날의 시각에서 보면 이는 끔찍한 비극으로밖에 읽히지 않습니다.
1817년 먼로 대통령 시기에는 플로리다에서 세미놀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먼로의 목표는 원주민 세력을 약화시키는 동시에, 플로리다가 도망 노예들의 피난처가 되는 것을 막는 것이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실제로 도망친 흑인 노예와 원주민들이 손잡고 미국에 맞서는 일이 벌어졌고, 잭슨은 원주민을 도운 영국인 두 명을 처형하는 강경 조치까지 단행했습니다.
이러한 행보는 '명백한 운명(매니페스트 데스티니)'을 내세운 존 퀸시 애덤스의 지지를 받았고, 그 결과 미국은 스페인으로부터 플로리다를 매입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잭슨은 초대 플로리다 주지사로 임명됩니다.
먼로의 뒤를 이은 대선에서 잭슨은 애덤스와 맞붙었지만 접전 끝에 패배했고, 애덤스가 제6대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잭슨은 “국민의 후보가 동부 귀족들에게 짓밟혔다”며 분노를 감추지 못했습니다.
당시 미국은 동부와 서부, 북부와 남부로 나뉘어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었습니다. 북부는 산업혁명을 맞아 급속히 공업화되었고, 남부는 노예제에 기반한 플랜테이션 경영이 성행했으며, 서부는 인디언으로부터 땅을 빼앗아 개척할지를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다음 대선은 역대 최악의 비방전이 되었고, 그 결과 앤드류 잭슨이 당선되어 미국 제7대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잭소니안 민주주의
에이브러햄 링컨은 남북전쟁 중 “민유(民有), 민치(民治), 민향(民享)의 정치”라는 유명한 연설을 남겼습니다. 반면 잭슨이 실현한 정치는 '백인의, 백인에 의한, 백인을 위한 정치'였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세계사 교과서는 이를 '잭소니안 민주주의'라 부르며 민주주의를 확산한 대통령으로 소개합니다. 실제로 잭슨은 20세 이상 백인 남성에게 보편 참정권을 실현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적어도 4천 명 이상의 무고한 원주민 목숨을 앗아간 '인디언 강제 이주법'을 제정하기도 했습니다.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이런 학살은 인류 역사에서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사건이며, 이 또한 미국이라는 나라의 역사가 지닌 한 단면입니다.
하지만 잭슨은 원주민 학살만으로 정의되는 대통령은 아닙니다. 그는 지금도 이어지는 '엽관제(spoils system)'를 도입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엽관제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관료를 대폭 교체하는 제도입니다. 선거를 통한 숙청 효과가 작동하면서 특권적 지위에 앉아 있는 관료층의 세습을 어느 정도 억제할 수 있고, 좋든 나쁘든 과감한 개혁을 가능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필자는 특권적 지위와 아마쿠다리(天下り) 같은 폐단을 낳는 부패한 관료제를 생각하면, 이 제도가 다른 나라에도 도입될 만하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잭슨은 1845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향년 78세였습니다.
앤드류 잭슨에 대한 개인적 평가
수많은 무고한 생명을 빼앗은 그는 미국 대통령 역사에 남은 오점이자, 노예제와 인디언 학살 위에 영광을 쌓아 올린 인물입니다. 개인적으로 칭찬할 점은 거의 없지만, 엽관제라는 독특한 정치 제도를 도입한 점은 여전히 높이 살 만합니다.
잭슨 같은 인종차별주의자가 미국 대통령이 된 사실은 미국이라는 나라를 잘 보여주고, 링컨 같은 인물이 대통령이 된 사실 역시 미국을 잘 보여줍니다. 잘못된 통치에서 회복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었고, 아이러니하게도 그 시스템을 도입한 것이 바로 이 잭슨이었습니다.
필자는 어떤 이유에서든 인종차별주의자를 옹호할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당시 백인 사회의 입장에서 보면 잭슨은 훌륭한 대통령이었을 것이고, 피해자의 입장에서 보면 그에게 침을 뱉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영웅이란 원래 그런 것일지도 모릅니다. 찰리 채플린은 영화 『위대한 독재자』에서 “한 사람을 죽이면 범죄자지만, 전쟁에서 적들을 모조리 죽이면 영웅이 된다”는 취지의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우리는 그 깊이를 느껴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