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독립전쟁의 결정적인 전환점으로 꼽히는 사라토가 전투(Battles of Saratoga)에서 미국 측, 즉 '애국파(Patriots)'의 정확한 사망자 수는 오늘날까지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습니다.
프리먼 농장 전투의 사상자 규모
사라토가 전역의 첫 번째 격돌인 프리먼 농장 전투(Battle of Freeman's Farm)는 일반적으로 많은 사망자를 낸 전투로 평가되지 않습니다. 1777년 9월 19일에 벌어진 이 전투에서 미국군은 대략 500명에서 600명 사이의 사상자를 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다만 당시에는 부상자와 사망자를 구분해 세밀하게 기록하는 관행이 확립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중 실제로 몇 명이 목숨을 잃었는지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사라토가 전역의 배경
사라토가 전역은 두 차례의 주요 교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는 1777년 9월 19일의 프리먼 농장 전투이며, 두 번째는 같은 해 10월 7일에 벌어진 비미스 하이츠 전투(Battle of Bemis Heights)입니다. 호레이쇼 게이츠(Horatio Gates) 장군이 지휘하는 대륙군은 존 버고인(John Burgoyne) 장군이 이끄는 영국군을 상대로 승세를 잡았고, 결국 1777년 10월 17일 버고인의 군대가 항복하면서 전역은 미국의 승리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역사학자들은 당시의 보고서와 생존자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사상자 규모를 추정할 수 있을 뿐, 개별 병사의 생사 여부까지 담긴 완전한 기록은 드물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이는 18세기 전장에서 흔히 발견되는 한계이기도 합니다.
사라토가 승리가 남긴 의미
비록 정확한 사망자 수는 알 수 없지만, 사라토가에서 거둔 승리가 남긴 영향은 매우 컸습니다. 이 승리는 프랑스가 미국 편에 서서 공식적으로 참전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으며, 이후 스페인과 네덜란드까지 참전하면서 독립전쟁의 판도를 크게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래서 사라토가 전투는 오늘날까지 '미국 독립의 밑거름'이 된 전투로 평가받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