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부터 말하면, 토머스 제퍼슨은 미국 독립선언서에 여성을 포함시키지 않았습니다. 1776년 독립선언서를 작성하고 서명한 인물들은 모두 남성이었으며, 여성은 선언문 작성 과정에서 공식적인 역할을 맡지 못했습니다.
독립선언서와 56명의 서명자
독립선언서는 1776년 7월 4일 필라델피아의 대륙회의에서 채택되었으며, 초안은 주로 토머스 제퍼슨이 집필했습니다. 최종적으로 서명한 56명의 대표 전원이 남성이었고, 당시 여성에게는 정치 참여의 길 자체가 열려 있지 않았습니다.
18세기 여성의 법적·정치적 지위
미국 건국 당시 여성은 선거권이 없었고, 대부분 결혼 후에는 재산권과 법적 지위마저 남편에게 종속되는 관습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이러한 사회 구조 속에서 독립선언서가 남성 중심으로 작성된 것은 당대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 결과였습니다.
"여인들을 기억해 달라"는 아비게일 애덤스의 요청
흥미롭게도 독립선언서 채택보다 몇 달 앞선 1776년 3월, 존 애덤스의 아내 아비게일 애덤스는 남편에게 보낸 편지에서 새 나라를 세울 때 "여인들을 기억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이 요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새 헌법 속에 여성의 권리는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는 문구의 한계
독립선언서의 유명한 문구인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창조되었다(all men are created equal)"는 오늘날 널리 인용되지만, 당시에는 문자 그대로 백인 남성의 권리를 주로 염두에 둔 표현이었습니다. 여성, 노예, 원주민은 이 원칙의 실질적인 적용 대상에서 오랫동안 배제되어 있었습니다.
이후의 변화: 여성 참정권까지의 긴 여정
1848년 세네카폴스 회의에서 엘리자베스 캐디 스탠턴 등은 독립선언서를 본떠 '감정 선언문(Declaration of Sentiments)'을 발표하며 여성의 권리를 강력히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1920년, 미국 수정헌법 제19조가 통과되면서 비로소 여성에게 선거권이 보장되었습니다. 독립선언서의 이념은 후대에 이르러 여성 운동의 근거로 활용되며 그 해석이 점차 확장된 것입니다.
요컨대 제퍼슨이 여성을 '포함시킨' 것이 아니라, 당시의 법적·사회적 제약 속에서 여성은 처음부터 배제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는 개인의 선택이라기보다 18세기 시대상이 만든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