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녀 평등을 향한 길고도 아직 완결되지 않은 여정에서 가장 중요한 이정표 중 하나는 바로 여성이 세계 최강국 미국의 대통령 자리에 오르는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자리에는 아직 여성이 도달하지 못한 채입니다.
2016년, 힐러리 클린턴은 미국 역사상 최초로 주요 정당의 여성 대통령 후보가 되며 그 가능성을 현실 앞까지 끌어올렸습니다. 만약 그녀가 당선되었다면 전직 대통령이자 남편인 빌 클린턴이 '영부인'의 역할을 맡는 전례 없는 상황이 펼쳐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소개할 인물은 이보다 140여 년이나 앞선 1872년, 당시의 관습과 법을 과감히 무시하고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용감한 선구자입니다. 바로 미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 후보, 빅토리아 우드헐(Victoria Woodhull)입니다.
1838년 오하이오주에서 태어난 빅토리아는 여성과 노동자의 권리는 물론, 당시로서는 극히 파격적인 '자유연애' 사상까지 강력하게 지지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녀는 여동생과 함께 월스트리트에 중개 회사를 설립했고, 주간 신문을 창간해 칼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을 영어로 최초 번역·게재하는 등 당대 여성에게 허용되지 않던 일들을 차례로 이뤄냈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역사에 이름을 남긴 결정적 이유는 단연 미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 후보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1872년 5월 10일, 뉴욕에서 열린 대회에서 빅토리아는 신생 정당인 평등권당(Equal Rights Party)의 대통령 후보로 공식 지명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선거 운동은 온갖 장애물과 스캔들로 얼룩졌습니다. 흑인 출신 전 노예이자 노예제 폐지 운동의 지도자인 프레더릭 더글러스(본인은 거부)를 부통령 후보로 지명한 것을 시작으로, 선거를 며칠 앞두고는 유명 개신교 목사 헨리 워드 비처(Henry Ward Beecher)의 간통 혐의를 폭로하는 기사를 실었다는 이유로 외설 혐의로 체포되기까지 했습니다. 결국 빅토리아는 선거인단 표 한 표도 얻지 못했고, 그녀의 입후보를 지지한 일반 유권자의 표가 얼마나 되었는지에 대한 기록조차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빅토리아는 좌절에 굴하지 않고 여성과 노동자의 권리를 위한 투쟁을 계속했습니다. 이후 두 차례 더 입후보를 시도했으며, 파란만장했던 개인적 삶의 끝에서 결국 영국에 정착하며 생을 마감했습니다.
빅토리아 우드헐의 생애를 더 자세히 알고 싶은 분들은 아래 자료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참고 자료: Bio — Victoria Woodhull | National Women's History Museum
이미지 | 빅토리아 우드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