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의 역사

바이킹은 정확히 얼마나 많은 금을 약탈했을까?

바이킹들이 역사를 통해 약탈한 금의 총량을 정확히 아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당시에는 상세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았고, 수많은 전리품이 시간이 지나며 흩어지거나 녹여 재사용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료와 고고학적 발견을 통해 바이킹이 어떤 방식으로 금을 손에 넣었는지, 그리고 그 규모가 어느 정도였는지는 상당 부분 추정할 수 있습니다.

바이킹이 금을 손에 넣은 방법

1. 수도원과 정착지 약탈

793년 잉글랜드 린디스판 수도원 습격으로 시작된 바이킹의 약탈은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었습니다. 당시 수도원과 교회는 금세공 성물, 십자가, 성함(聖匣) 등 귀금속을 다량 보유하고 있었기에 바이킹에게 가장 매력적인 표적이었습니다.

2. 데인겔드(Danegeld)

흥미로운 점은 바이킹이 무력만으로 재산을 모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잉글랜드 왕국들은 추가 침략을 막기 위해 바이킹에게 거액의 은과 금을 공물로 지불했는데, 이를 '데인겔드'라 부릅니다. 일부 기록에 따르면 한 번의 지불에 은 수 톤에 달하는 금액이 오갔다고 전해집니다.

3. 무역과 통상

바이킹은 단순한 약탈자가 아니라 뛰어난 상인이기도 했습니다. 동방으로는 비잔틴 제국과 이슬람 세계와 교역하며 금화와 은화를 확보했고, 서방으로는 노예·모피·호박 등을 팔아 부를 축적했습니다.

고고학이 말해주는 바이킹의 부

스웨덴 고틀란드섬에서 발굴된 '스필링스 호드', 잉글랜드에서 나온 '쿠어데일 호드' 같은 대규모 보물고는 바이킹이 축적한 부의 규모를 짐작하게 합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발견되는 유물 대부분이 금보다는 은이라는 사실입니다. 이는 바이킹 경제에서 은이 주요 화폐 역할을 했고, 금은 상대적으로 희소하고 귀중한 자산이었음을 의미합니다.

결론

바이킹이 훔친 금의 정확한 양은 영원히 알 수 없겠지만, 약탈·공물·무역이라는 세 가지 경로를 통해 상상 이상의 부를 축적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남아 있는 보물고들과 역사 기록은 그들이 단순한 해적이 아니라 유럽 중세 경제를 뒤흔든 강력한 세력이었음을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