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의 역사

트렌턴에 대규모 영국군을 남겨 워싱턴 군대를 감시한 장군은 하우가 아니라 콘월리스였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트렌턴(Trenton)에 대규모 영국군을 남겨 두고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의 군대를 감시하게 한 장군은 윌리엄 하우(William Howe)가 아니라 찰스 콘월리스(Charles Cornwallis)였습니다.

하우 장군과 콘월리스 장군, 역할의 차이

1776년 뉴욕 전역에서 워싱턴의 대륙군을 연달아 격파한 것은 분명 하우 장군이 맞습니다. 그러나 이후 뉴욕으로 돌아간 하우와 달리, 뉴저지 지역의 작전을 총괄하며 델라웨어 강변의 요충지인 트렌턴에 상당 규모의 병력을 주둔시켜 워싱턴 군대의 움직임을 살피게 한 것은 콘월리스 장군이었습니다.

1776년 겨울, 최악의 위기를 맞은 대륙군

같은 해 늦가을, 워싱턴의 군대는 뉴욕에서의 패배 이후 뉴저지를 가로질러 계속 후퇴했고 마침내 델라웨어 강을 건너 펜실베이니아로 물러났습니다. 병사들의 사기는 바닥에 닿아 있었고, 상당수 병사의 복무 기간이 연말에 만료될 처지였습니다. 미국 독립전쟁의 향방이 갈릴 수 있었던 절체절명의 순간이었습니다.

이러한 정세 속에서 영국군은 트렌턴을 비롯한 강변 거점들에 부대를 배치해 워싱턴 군대를 압박하고 동향을 감시했습니다. 당시 트렌턴에는 헤센(Hessian) 용병 부대가 주둔하고 있었는데, 이들은 추운 겨울철에는 큰 전투가 없으리라 방심하고 있었습니다.

크리스마스 기습, 트렌턴 전투

워싱턴은 이 틈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1776년 12월 25일 밤, 그는 델라웨어 강을 역으로 건너 다음 날 새벽 트렌턴을 기습하여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 승리는 흩어져 가던 대륙군의 사기를 되살리고 독립전쟁의 흐름을 바꾸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소식을 접한 콘월리스는 즉각 대군을 이끌고 반격에 나섔지만, 워싱턴은 프린스턴(Princeton)에서 또 한 번 기습 승리를 거두며 뉴저지에서의 발판을 굳건히 다졌습니다.

정리

요컨대, 뉴욕에서 워싱턴을 격파한 것은 하우 장군이 맞지만, 트렌턴에 대규모 병력을 남겨 워싱턴 군대를 감시하게 한 것은 콘월리스 장군이라는 점을 기억하시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