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5년 1월, 스페인의 정복자 프란시스코 피사로(Francisco Pizarro)는 페루 중부 해안에 '왕들의 도시(Ciudad de los Reyes)'를 건설했습니다. 이 도시가 바로 오늘날 페루의 수도인 리마(Lima)의 시초입니다. 흥미롭게도 피사로가 이곳을 새 거점으로 선택한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전해집니다.
카하마르카의 갈등을 피하기 위해서?
한 가지 설에 따르면, 피사로는 잉카 황제 아타우알파(Atahualpa)를 포로로 유폐했던 카하마르카(Cajamarca)에서 스페인 병사들과 원주민 사이의 갈등이 끊이지 않자, 이를 벗어나 더 안전한 곳으로 거점을 옮기고자 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카하마르카는 고산 지대에 위치해 있어 정착 조건도 썩 좋지 않았습니다.
교역과 군사 작전의 요충지
반면 또 다른 설은 리마의 전략적 위치에 주목합니다. 리마는 태평양 연안과 안데스 산맥 사이에 자리해 교역의 중심지로 삼기에 적합했고, 잉카 제국과 주변 원주민 세력에 대한 군사 원정을 수행하기에도 유리한 곳이었습니다.
바다와 이어진 식민지의 심장
특히 리마 근교의 칼라오(Callao) 항구를 통해 파나마와 스페인 본국으로의 보급선과 소통로가 확보되면서, 리마는 스페인 남미 식민지 통치의 중심 도시로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리마 건설은 내부 갈등의 회피와 잉카 정복 활동의 효율화라는 두 가지 목적이 결합된, 피사로의 치밀한 전략적 선택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