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시기, 각국에는 자국이 전쟁에 휘말리는 것을 막고 해외 분쟁에 대한 개입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고립주의(비개입주의) 흐름이 존재했습니다. 특히 미국에서는 강력한 반전 여론이 형성되었고, 유럽에서도 전쟁 재발을 두려워하는 정치인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이 글에서는 당시 고립주의 또는 비개입 노선으로 분류되었던 대표 인물들을 국가별로 살펴봅니다.
미국의 고립주의자들
미국은 제1차 세계대전의 참상과 경제 대공황의 여파 속에서 '유럽의 전쟁에 다시 발을 들이지 말자'는 여론이 매우 강했습니다. 대표적인 인물은 다음과 같습니다.
- 찰스 린드버그(Charles Lindbergh) – 대서양 단독 무착륙 비행으로 세계적 영웅이 된 조종사로, 반전 단체 '아메리카 퍼스트 위원회(America First Committee)'의 상징적 인물이 되어 미국의 참전에 강하게 반대했습니다.
- 제럴드 나이(Gerald Nye) 상원의원 –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무기업체와 은행이 전쟁으로 이익을 취했다고 폭로한 '나이 위원회'를 주도하며 중립주의 여론 형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 윌리엄 보라(William Borah) 상원의원 – 국제연맹 가입에 반대했던 저명한 고립주의자로, '고립주의의 사자'라는 별명으로 불렸습니다.
- 버턴 K. 휠러(Burton K. Wheeler) 상원의원 – 몬태나 출신의 진보 성향 의원으로, 미국이 유럽 전쟁에 끌려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활동했습니다.
- 로버트 라폴레트 주니어(Robert La Follette Jr.) 상원의원 – 위스콘신 출신 진보주의 의원으로, 해외 군사 개입에 일관되게 반대했습니다.
- 해밀턴 피시(Hamilton Fish) 하원의원 – 뉴욕 출신 공화당 의원으로, 미국의 참전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대표했습니다.
- 루이스 러들로(Louis Ludlow) 하원의원 – 전쟁 선포 여부를 의회가 아닌 국민투표로 결정하자는 '러들로 수정안'을 제안해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영국의 고립주의·유화정책 인물들
영국에서는 전쟁을 피하기 위해 나치 독일에 타협하는 '유화정책(appeasement)'이 주류가 되었고, 이를 주도한 인물들이 고립주의적 성향으로 평가받곤 합니다.
- 네빌 체임벌린(Neville Chamberlain) – 뮌헨 협정을 통해 '우리 시대의 평화'를 선언했던 총수로, 유화정책의 상징적 인물입니다.
- 핼리팩스 경(Lord Halifax) – 외무장관으로서 체임벌린의 대독 타협 노선을 적극적으로 지지했습니다.
- 스탠리 볼드윈(Earl Baldwin of Bewdley) – 전간기 영국 총리로, 재군비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 전쟁 준비 부실에 대한 비판을 받았습니다.
- 베드퍼드 공작 8세(Edward, 8th Duke of Bedford) – 평화주의적·친독 성향으로 알려진 귀족으로, 독일과의 화해를 주장했습니다.
프랑스의 비개입·협력주의 인물들
1차 대전의 상흔이 깊었던 프랑스 역시 전쟁 회피를 바라는 정치인이 많았으며, 일부는 패전 후 독일과 협력하는 길을 택했습니다.
- 페탱 원수(Marshal Philippe Pétain) – 베르됭 전투의 영웅이었으나, 1940년 프랑스 항복 후 비시 프랑스를 이끌며 독일 점령 당국과 협력했습니다.
- 피에르 라발(Pierre Laval) – 비시 정권의 핵심 실권자로, 친독 협력 정책을 주도해 종전 후 반역죄로 처형되었습니다.
- 가스통 도메르그(Gaston Doumergue) – 전간기 프랑스의 보수적 정치인으로, 군비 확장과 강경 외교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 에두아르 에리오(Édouard Herriot) – 급진당 지도자로, 또 다른 전쟁의 참화를 우려해 비개입적 입장을 취했습니다.
독일: 나치 지도부는 왜 목록에 포함되었을까?
원래 목록에는 아돌프 히틀러, 요아힘 폰 리벤트로프, 헤르만 괴링, 요제프 괴벨스 등 나치 지도부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다만 엄밀히 말해 이들은 '고립주의자'라기보다는 팽창주의·국수주의 노선을 추구한 인물들입니다. '타국의 문제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명분 아래 자국 중심의 강경책을 내세웠다는 점에서 함께 거론되는 것으로 보이며, 미국식 고립주의와는 성격이 확연히 다릅니다.
마무리: 고립주의는 나라마다 달랐다
같은 '고립주의'라 불려도 그 실질은 국가마다, 인물마다 달랐습니다. 미국의 고립주의는 순수한 비개입·반전 운동에 가까웠고, 영국과 프랑스의 경우는 전쟁 회피를 위한 유화정책 또는 협력주의에 가까웠습니다. 반면 독일의 나치 지도부는 오히려 공격적 팽창주의를 추구했습니다. 이러한 차이를 이해하면 제2차 세계대전 전후의 국제정세를 더 입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