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타운과 플리머스가 영국 식민지였던 이유
제임스타운(Jamestown)과 플리머스(Plymouth)가 영국 식민지인 이유는 간단합니다. 두 정착지 모두 잉글랜드 출신 정착민들이 건설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두 식민지는 설립 시기, 목적, 그리고 초기 정착민들의 삶에서 흥미로운 차이를 보여줍니다.
제임스타운: 북미 최초의 영구 영국 정착지
1607년에 설립된 제임스타운은 북아메리카 최초의 영구 영국 정착지였습니다. 정착민들은 잉글랜드 국왕 제임스 1세로부터 특허장을 받은 합자회사인 '런던 버지니아 회사'가 파견한 104명의 남성과 소년들이었습니다. 제임스타운은 현재 미국 버지니아주의 제임스 강변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플리머스: 종교의 자유를 찾아서
1620년에 설립된 플리머스는 북아메리카에서 두 번째 영구 영국 정착지였습니다. 정착민들은 유명한 메이플라워호(Mayflower)를 타고 잉글랜드를 떠난 102명의 청교도들이었으며, 현재 미국 매사추세츠주에 해당하는 지역에 정착했습니다.
두 식민지의 설립 목적
제임스타운은 철저히 상업적 목적에서 출발했습니다. 런던 버지니아 회사는 버지니아에서 담배와 기타 물자를 수출해 이익을 내는 것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반면 플리머스는 종교적 동기로 설립된 식민지였습니다. 플리머스를 건설한 청교도들은 고향에서 누리지 못했던 신앙의 자유를 실천할 수 있는 새로운 터전을 찾고 있었습니다.
초기 정착민들의 삶
제임스타운의 초기 생활은 극도로 험난했습니다. 정착민들은 각종 질병에 시달렸고, 원주민들의 공격에 끊임없이 대비해야 했습니다.
플리머스의 생활 역시 쉽지 않았습니다. 정착민들은 농사를 지을 땅을 일일이 개간해야 했고, 가옥과 교회까지 손수 지어야 했습니다.
어려움을 넘어 성장하다
이러한 극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제임스타운과 플리머스는 모두 생존에 성공했고 꾸준히 성장했습니다. 두 정착지는 훗날 미합중국(USA) 건국의 중요한 초석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