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3년 7월 26일, 잉카 제국의 마지막 통치자 아타왈파는 스페인인들이 사용한 '가로테'(죄수의 목을 조여 죽이는 장치)에 의해 처형되었다. 그의 죽음은 위대한 잉카 제국의 종말을 의미하는 동시에, 남미 이 지역에 대한 스페인 정복의 서막을 열었다. 그런데 불과 1년 전, 아타왈파는 사파 잉카('유일무이한 잉카'를 뜻하는 칭호)의 자리를 놓고 벌어진 피비린내 나는 내전에서 방금 승리를 거두었을 뿐이었다. 이 전쟁은 잉카 내전, 잉카 왕조 전쟁, 잉카 계승 전쟁, 그리고 '두 형제의 전쟁'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린다.

2004년 페루 우표에 등장한 우아스카르(왼쪽)와 아타왈파의 초상.
사파 잉카의 죽음
두 형제의 전쟁은 1527년 사파 잉카 우아이나 카파크와 그의 후계자 니난 쿠요치가 잇달아 세상을 떠나면서 시작되었다. 두 사람 모두 천연두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 질병은 스페인인들이 대륙에 도래한 이후 원주민 공동체 사이에서 급속도로 번져 나갔다.
전통적으로 사파 잉카는 장남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 그러나 우아이나 카파크의 경우 장남 니난 쿠요치가 아버지보다 먼저 요절했다. 아들의 죽음 직후 우아이나 카파크 자신도 임종을 앞두게 되었고, 바로 이러한 상황 속에서 그는 오랜 전통을 깨고 제국을 차남인 우아스카르와 아타왈파, 두 형제에게 나누어 물려주기로 했다.
잉카 제국의 분할
두 아들 가운데 형인 우아스카르는 우아이나 카파크의 정식 부인 사이에서 태어난 둘째 아들이었다. 반면 아타왈파는 후궁 중 한 명과의 사이에서 얻은 아이라고 전해진다. 이에 우아이나 카파크는 제국의 대부분을 우아스카르에게 넘기되, 북방의 키토와 그 주변 지역만은 아타왈파에게 물려주었다.
잉카 제국의 수도 쿠스코를 다스린 우아스카르는 대다수 백성의 충성을 얻었다. 반면 아타왈파는 변경 부족들을 정복하기 위해 북방에 주둔하던 잉카 군대의 지지를 확보했다. 게다가 찰쿠치마크, 키스키스, 루미냐우이 등 세 명의 핵심 장군까지 동생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제12대 잉카 황제, 우아이나 카파크.
전쟁의 시작
우아이나 카파크는 두 형제가 화목하게 함께 제국을 통치하리라 믿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우아스카르는 아타왈파가 강력한 잉카 군대를 장악하고 있는 것을 자신의 사파 잉카 지위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으로 간주했고, 키토를 정복하기 위해 먼저 공격을 개시했다.
초기에는 이 작전이 성공적인 듯 보였다. 우아스카르의 군대는 아타왈파를 격파하고 토메밤바 인근에서 그를 생포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아타왈파는 탈출에 성공해 키토로 돌아간 뒤 병력을 재정비했다. 우아스카르가 북방의 중심 도시를 공략하려 했으나 오히려 패배하여 다시 남쪽으로 후퇴해야 했다. 이 무렵 아타왈파는 찰쿠치마크와 키스키스가 이끄는 대군을 우아스카르에게 파병했고, 루미냐우이 장군은 키토에 남아 후방을 지켰다.
우아스카르를 둘러싼 흉흉한 소문들
우아스카르는 점차 백성들에게 미움받는 통치자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예컨대 그는 아버지 우아이나 카파크의 유해를 호송하던 귀족들을 살해한 혐의를 받았는데, 이들은 쿠스코에서 높은 사회적 지위를 누리던 인물들이었다. 여기에 더해, 우아스카르가 왕실 미라의 재산을 빼앗고 나아가 그 신성한 유해를 불태우겠다고 위협했다는 이유로 귀족들마저 등을 돌렸다고 한다.
심지어 아타왈파가 보낸 사절들을 모두 죽였다는 주장도 있었다. 또한 아타왈파가 보낸 선물을 운반하던 사절들의 코를 잘라낸 뒤, 옷을 찢어 허름하게 만들어 되돌려보냈다는 비난도 받았다.
다만 우아스카르의 잔혹함에 관한 이러한 고발들은 아마도 승자의 시각, 즉 아타왈파 본인과 그의 장군들, 동맹 세력에 의해 만들어진 기록일 가능성이 크다. 우아스카르와 그의 백성들이 경험했던 역사의 또 다른 버전은 영원히 잃어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푸투투(소라 껍질)를 부는 차스키. 차스키는 잉카 제국의 빠른 전령으로, 하루 최대 240km를 달릴 수 있다고 전해진다. 효율적인 교대 시스템을 통해 키토에서 쿠스코까지 중요한 메시지를 단 일주일 만에 전달할 수 있었다.
형제 간 전쟁의 종말, 그리고 새로운 제국의 등장
1532년, 아타왈파의 군대는 쿠스코 교외에서 벌어진 결정적인 전투에서 우아스카르의 군세를 격파하고 그를 포로로 잡았다. 이 승리의 소식은 아타왈파가 카하마르카에 머무르던 중에 전해졌는데, 하필 그 시기 그 지역에서는 '얼굴에 양털 같은 수염을 기른' 피부가 하얀 기이한 남자들이 목격되고 있었다. 스페인인들이 도래한 것이다.
아타왈파는 당시 자신의 통치가 얼마나 짧을지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그 기이한 이방인들은 결국 그의 군대를 격파하고 그를 처형해 제국에 종지부를 찍었으니 말이다. 실제로 아타왈파는 우아스카르를 꺾은 승리 직후 얼마 지나지 않아 감옥에 갇히게 된다. 결국 두 형제의 전쟁은 단일 통치자 아래 잉카 제국을 재통합하는 데 실패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신대륙에 건너온 스페인인들에 의한 잉카 정복의 길을 스스로 열어준 셈이 되었다.

아타왈파의 군대의 포로가 된 우아스카르, 펠리페 우아만 포마 데 아야라의 삽화.
참고 자료
Hidden Inca Tours, 2015. The Inca Civil War: Not Civil at 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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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ster, C., 2015. Huáscar and Atahualpa: An Inca Civil War.
Rodriguez, J., 2014. 10 Broken Lines Of Succession That Changed The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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