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메리카의 역사

브라질 제1공화국(1889~1930): 군부 통치에서 '커피와 우유' 과두정치까지

브라질의 제1공화국은 1889년 11월 15일 군주제가 무너진 뒤부터 1930년 혁명에 이르기까지 약 40여 년간 지속된 시기를 가리킵니다.

역사학자들은 이 시기를 '올리고키 공화국(Oligarchic Republic)', '콜로넬 공화국(Republic of Colonels)', 그리고 '커피 우유 공화국(Café com Leite)'이라고도 불렀습니다.

1930년 혁명이 승리한 후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다는 인식을 강조하기 위해, 이 시기는 멸칭으로 구 공화국(Old Republic)이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제1공화국 개요

제1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은 마레샤우 데오도루 다 폰세카(Marechal Deodoro da Fonseca)였으며, 마지막 대통령은 워싱턴 루이스(Washington Luís)였습니다.

1891년 데오도루 다 폰세카가 사임하자 부통령이었던 플로리아누 페이소투(Floriano Peixoto)가 권력을 승계했습니다. 한편 최초의 문민 출신 대통령은 1894년에 선출된 프루덴트 드 모라이스(Prudente de Moraes)였습니다.

학습 목적상 제1공화국은 크게 두 시기로 나눌 수 있습니다.

  1. 검의 공화국(República da Espada, 1889~1894): 데오도루 다 폰세카와 플로리아누 페이소투의 군사 정부 시기
  2. 올리고키 공화국(1895~1930): 상파울루와 미나스제라이스의 농촌 과두 세력이 집권한 시기. 주로 커피 농장주들이 다른 주의 농업 생산자들과 연합해 행사한 '코로넬리즈무(coronelismo)'가 특징입니다.

이 시기 브라질은 1891년에 제정된 헌법에 따라 통치되었습니다. 이 헌법은 대통령제, 21세 이상의 참정권, 신앙의 자유, 의무적 시민혼 등을 규정했습니다. 이는 브라질 역사상 두 번째 헌법이자 공화국 선포 이후 최초의 헌법이었습니다.

제1공화국의 특징

제1공화국은 브라질 역사에서 매우 격동의 시기였습니다.

새 정권은 서민층의 염원을 충족시키지 못했고, 그 결과 카누두스 전쟁(1893~1897)과 콘테스타두 전쟁(1912~1916) 같은 내전이 벌어져 수천 명의 희생자를 냈습니다.

대도시에서도 갈등이 이어졌는데, 대표적인 사례가 백신 반란(Vaccine Revolt, 1904)과 채찍 반란(Lash Revolt, 1910)입니다.

정치·경제 엘리트들은 부정선거와 상호 이권 거래를 통해 권력을 유지했습니다. 커피에 의존하던 경제는 초기 산업화를 통해 다변화를 모색하기 시작했습니다.

주지사 정책(Política dos Governadores)

브라질 제1공화국(1889~1930): 군부 통치에서  커피와 우유  과두정치까지

'주지사 정책'은 정치적 호의를 주고받는 방식으로 이뤄진 동맹 체제였습니다.

각 주의 주지사들은 대통령에게 우호적인 국회의원 선출을 지지하는 대신, 더 많은 재정 지원을 받았고 동맹 세력에게 정치직 임명 기회를 보장받았습니다.

이 정치 체제는 '커피 우유 정책(política do café com leite)'이라고도 불렸습니다. 이는 미나스제라이스와 상파울루 출신 대통령, 혹은 두 주의 지원을 받는 대통령이 교대로 집권했다는 의미에서 붙은 이름입니다.

두 주는 각각 미나스 공화당(PRM)과 상파울루 공화당(PRP)이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널리 퍼진 통념과 달리, 미나스제라이스의 가장 중요한 산물은 우유가 아니라 커피였으며, 최대 커피 생산지는 상파울루였습니다.

제1공화국의 선거 제도

공화국 초기에는 21세 이상으로 읽고 쓸 줄 아는 시민에게 공개 투표권이 부여되었습니다. 다만 군인과 성직자는 선거 과정에서 제외되었습니다.

여성들은 애매한 지위에 있었습니다. 헌법은 남성만 투표할 수 있다고 규정했지만 여성 참정권을 명시적으로 금지하지는 않았고, 일부 여성은 이 허점을 이용해 투표권을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인구 대다수는 문맹이었고, 1,200만 명의 인구 중 실제 선거에 참여할 수 있었던 사람은 10%에 불과했습니다.

선거는 부정행위로 얼룩졌으며, 지방 유력자인 '코로넬(colonel)'들이 빈곤 유권자가 누구에게 표를 던져야 하는지를 지시하는 이른바 '고삐 투표(voto de cabresto)'가 만연했습니다.

선거 결과 확정은 검증위원회(Comissão Verificadora)의 몫이었습니다. 이 위원회는 대통령에게 우호적이었고, 연합 의원들의 이름을 승인하는 방식으로 결과를 왜곡하는 일이 비일비재했습니다.

제1공화국의 경제

이 시기 경제는 농촌 중심이었으며, 제1공화국 전 기간 동안 브라질 수출의 50% 이상을 차지한 커피 생산이 핵심이었습니다.

설탕, 면화, 고무, 코코아 생산도 경제에서 일정 부분을 담당했습니다.

당시 최대 커피 생산지는 상파울루주였으며, 이 지역은 브라질인들과 이민자들 모두에게 매력적인 이주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산업화

이 시기에는 산업이 성장했으며, 특히 브라질 전체 공장의 31%가 집중된 상파울루가 두드러졌습니다.

노동 계급이 성장함에 따라, 더 나은 노동 조건과 노동권 보장을 요구하는 노동운동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러한 단체 상당수는 유럽에서 유행하던 아나키즘 같은 새로운 사상을 들여온 이민자들이 이끌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1914~1918)이 발발하고 공산품 수입이 어려워지면서 브라질 내 공업은 더욱 중요성을 갖게 되었습니다.

타우바테 협정(Convênio de Taubaté)

브라질 제1공화국(1889~1930): 군부 통치에서  커피와 우유  과두정치까지

앞서 살펴본 것처럼, 당시 브라질 정치는 커피 경제와 주지사들이 연방 정부로부터 특혜를 얻기 위해 맺는 거래에 좌우되었습니다.

브라질의 커피 생산량은 세계 시장의 3분의 2에 해당했습니다. 한때 노예화된 흑인들에 의해 관리되던 커피 농장은 이제 외국인 임금 노동력에 의존하게 되었습니다.

더 많은 이윤을 추구한 농장주들이 생산량을 늘리자 커피가 과잉 공급되었고, 가격이 폭락하며 수익이 급감했습니다.

이에 따라 1906년 상파울루의 타우바테(Taubaté)에서 커피 생산자들이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회합했습니다. 이 회의는 역사에 '타우바테 협정'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이 회의에서 정부가 잉여 커피를 매입해 저장하고, 가격이 회복될 때 판매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농장주들은 손실 없이 파산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잉여 커피 구입을 위해 정부는 해외에서 차관을 들였습니다.

그러나 과잉 생산은 계속되었고, 정부는 판매 기회를 찾지 못한 채 커피만 쌓아갔습니다. 1929년 세계 대공황이 시작되며 세계 무역량이 급감하자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습니다.

제1공화국 시기의 사회 운동

브라질 제1공화국(1889~1930): 군부 통치에서  커피와 우유  과두정치까지

제1공화국 시기는 브라질 산업화가 본격적으로 이어진 시기이기도 합니다. 최초의 섬유 및 건축자재 공장들이 주로 상파울루와 리우데자네이루에 설립되었습니다.

1889년 브라질에는 600개 공장에 54,000명의 노동자가 있었으나, 1922년에는 공장 수가 13,000개로 늘어 275,000명이 일하게 되었습니다.

산업 확장은 노동 계급의 형성으로 이어졌지만, 노동권 보장은 전무했습니다. 공장주들은 하루 최대 15시간에 달하는 과중한 노동을 강요했습니다.

휴가권은 없었고 임금은 극히 낮았으며 작업 환경도 열악했습니다. 특히 아동에 대한 물리적 폭력도 결코 드문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에 노동자들은 상호부조금과 노동자 위원회를 조직하며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노동 조건 개선, 미성년자 착취 방지, 물가 상승 대책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이 운동은 브라질 노동조합 활동의 전신이 되었습니다. 1917년에는 상파울루에서 첫 파업이 시작되어 전국으로 파급되었고, 이후 최초의 노동법 제정으로 이어졌습니다.

제1공화국의 종말: 1930년 쿠데타

제1공화국의 시대는 워싱턴 루이스 대통령에 대한 1930년 쿠데타와 함께 막을 내립니다.

커피 가격 폭락으로 인한 경제 위기와 올리고키 정치에서 소외된 주지사들의 불만이 이 체제의 붕괴를 초래했습니다.

히우그란지두술과 파라이바의 주지사들은 '커피 우유 정책'의 혜택을 받지 못한 주들의 지원을 받아, 히우그란지두술 출신 게훌리우 바르가스(Getúlio Vargas)를 대통령 후보로 내세웠습니다.

결국 1930년 선거에서 상파울루 후보 줄리우 프레스티스(Júlio Prestes)가 승리했지만, 바르가스는 군의 지원을 받아 그의 취임을 저지했습니다.

정부를 옹호할 반응이 없자 바르가스는 공화국 대통령직을 승계했으며, 1945년까지 집권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