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의 제1차 세계대전 참전은 1917년 4월, 독일이 브라질 선박을 격침시키면서 확정되었습니다. 같은 해 10월, 브라질은 독일 제국에 정식으로 선전포고를 하고 지중해에서 관측 임무를 수행할 간호사, 의사, 비행사들을 파견했습니다.
역사적 배경
1914년 7월 28일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브라질은 8월 4일 중립 입장을 공식 선언했습니다. 이는 전쟁 초기 단계에서 중립을 선언한 미국의 결정을 따른 것으로, 당시 브라질 외교의 기본 방향을 반영한 것이었습니다.
브라질의 이러한 태도는 육군부 장관을 맡았던 헤르메스 다 폰세카(Hermes da Fonseca) 원수(1850~1923) 시절부터 이어져 온 외교 노선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당시 브라질과 독일 사이에는 활발한 정치·상업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브라질은 세계에서 가장 잘 훈련되고 조직적인 군대로 평가받던 독일군에 장교들을 파견했으며, 브라질 정부 역시 독일 기업들로부터 무기를 구매하고 있었습니다.

더욱이 브라질 남부 지역에는 상당수의 독일계 이민자들이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브라질은 유럽의 전쟁에 개입할 명분이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독일에 대한 선전포고
브라질의 입장이 바뀌기 시작한 것은 1917년 4월 11일, 독일 잠수함이 브라질 선박 '파라나(Paraná)'호를 어뢰로 격침시키면서부터였습니다. 이 사건으로 브라질은 독일과 국교를 단절했습니다.
같은 해 5월에는 상선 '티주카(Tijuca)'호와 '라파(Lapa)'호가 유럽 연안에서 추가로 어뢰 공격을 받았습니다.
연이은 선박 침몰 소식은 국내 여론에 큰 충격을 주었고, 대중들은 독일에 대한 선전포고를 강력히 지지했습니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 브라질은 자국 항구에 정박해 있던 독일 상선 45척을 몰수했습니다.
그러나 독일은 화물선 '마카오(Macao)'호를 공격하고 스페인 연안에서 브라질 함장 한 명을 억류하는 등 도발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결국 1917년 10월 26일, 브라질은 교전국 입장을 공식 채택했습니다.
전쟁 상태에 들어간 브라질 정부는 국내 거주 독일인들의 모든 형태의 무역 활동을 금지했습니다.
벤셀라우 브라스(Wenceslau Braz) 대통령은 1917년 11월 16일 전쟁법을 재가했습니다. 이 법에 따라 독일계 은행과 보험회사의 영업 허가가 취소되는 등 다양한 보복 조치가 시행되었습니다.

브라질의 참전 활동
브라질은 전투 부대를 파견한 유일한 남미 국가였습니다. 볼리비아, 에콰도르, 우루과이, 페루는 독일과의 국교 단절에 그쳤으며, 칠레, 멕시코, 베네수엘라, 파라과이, 아르헨티나는 끝까지 중립을 유지했습니다.
전쟁에 참가한 브라질은 1918년 5월 16일, 히우그란지두술(Rio Grande do Sul), 바이아(Bahia), 파라이바(Paraíba), 히우그란지두노르치(Rio Grande do Norte), 피아우이(Piauí), 산타카타리나(Santa Catarina) 등의 함선으로 구성된 해군 분함대를 전선에 파견했습니다.
또한 브라질은 정찰 및 관측 임무를 수행하고 부상병들에게 의료 지원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연합군의 공중 작전을 지원했습니다.
델핑 모레이라(Delfim Moreira) 대통령 정부는 1919년 베르사유에서 열린 강화회의에 대표단을 파견했습니다. 이 회의에서 베르사유 조약이 체결되었습니다.
브라질은 침몰한 선박에 대한 금전적 배상을 요청했고, 그 결과 전쟁 중 몰수한 독일 선박들을 브라질 국가 소유로 이전받는 데 성공했습니다.
아울러 브라질은 국제연합(UN)의 전신인 국제연맹 설립 과정에도 참여하며 전후 국제 질서 구축에 일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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