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메리카의 역사

발라야다 항쟁(1838~1841): 브라질 마라냥의 민중 봉기

발라야다란 무엇인가?

발라야다(Balaiada)는 1838년부터 1841년까지 브라질 북동부 마라냥(Maranhão) 주를 중심으로 전개된 대표적인 민중 봉기입니다.

이 반란은 더 나은 생활 조건을 요구하는 사회적 저항으로 일어났으며, 카우보이, 노예, 그리고 다양한 사회적 소외 계층이 함께 참여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닙니다.

'발라야다'라는 이름은 이 지역에서 만들어진 바구니를 뜻하는 '발라요(balaio)'에서 유래했습니다.

봉기의 주요 원인

발라야다 항쟁(1838~1841): 브라질 마라냥의 민중 봉기

바구니를 엮고 있는 노예들의 모습

발라야다의 주요 원인은 마라냥 주 주민들의 극심한 빈곤, 그리고 지역 대지주들의 정치적 폭거에 대한 불만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대지주들은 정치적 패권 다툼에만 몰두했을 뿐, 부당한 처우와 관료들의 권력 남용에 시달리던 백성들의 고통에는 무관심했습니다.

당시 지배 엘리트는 두 개의 정파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 벵테비(Bem-te-vis): 자유주의 성향의 세력으로, 봉기 초기에는 발라요 세력을 간접적으로 지원했습니다.
  • 카바누(Cabanos): 보수주의 성향의 세력으로, 발라요 세력에 맞섰습니다.

두 정파가 주 내 권력 다툼을 벌이는 동안, 미국산 면화와의 경쟁으로 경제 위기는 더욱 심화되었고, 이는 엘리트와 빈민층 사이의 갈등을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까지 끌어올렸습니다.

그럼에도 지주들은 '시장 임명법'을 제정하여 주지사가 시장을 직접 임명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는 여러 곳에서 반란의 불씨를 일으키며 결국 발라야다로 번지게 되었습니다.

봉기의 전개 과정

발라야다 항쟁(1838~1841): 브라질 마라냥의 민중 봉기

발라야다에서 벌어진 전투 지역을 보여주는 지도

발라야다는 확고한 통합 지도 체제가 없었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그럼에도 제국군을 상대로 게릴라 전술을 구사하며 두각을 나타낸 지도자들이 있었습니다.

그중 가장 두드러진 인물은 바로 봉기의 도화선을 연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카우보이 라이문두 고메스(Raimundo Gomes)는 형제가 빌라다망가(Vila da Manga)에서 체포되자 동료들과 함께 마을의 공공 감옥을 습격했습니다. 1838년 12월 13일, 그는 수감자 전원을 석방하고 상당수의 무기와 탄약을 확보했습니다.

같은 시기, 장인이자 바구니 장이었던 마누엘 두스 안조스 페헤이라(Manoel dos Anjos Ferreira)는 병사에게 딸들이 모욕당하는 일을 겪고 직접 나섰습니다. 분노에 찬 그는 무장 집단을 조직해 마라냥의 여러 마을과 농장을 공격했습니다.

이후 이들은 세 번째 지휘관인 흑인 코즈메 벤투 데 샤가스(Cosme Bento de Chagas)와 합류합니다. 그는 도망 노예 공동체 출신으로, 약 3,000명의 흑인 부대를 이끄는 군사 지도자였습니다.

1839년, 빌라 드 카시아스(Vila de Caxias)와 바르젱그란데(Vargem Grande) 같은 주요 거점을 차례로 함락하는 등 연전연승을 거두자, 반군은 잠정 정부를 수립하기에 이릅니다.

그러나 '발라요'로 알려진 마누엘 두스 안조스가 전투 중 화망에 맞아 사망하면서 운동은 쇠퇴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같은 해 전(前)노예였던 코즈메가 지도권을 넘겨받았지만, 그는 전선에서 물러나 부대를 이끌고 내륙 건조 지대인 세르탕으로 철수했습니다.

최종 결전

반군의 상황은 숙련된 군인 루이스 알베스 드 리마 이 실바(Luís Alves de Lima e Silva) 대령, 훗날의 카시아스 공작(Duque de Caxias)이 마라냥, 피아우이, 세아라 전역의 병력 지휘권을 넘겨받으면서 더욱 악화되었습니다. 1840년 2월 7일 기준, 그의 부대는 무장을 갖춘 8,000명 이상의 병력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대령은 고전 끝에 라이문두 고메스를 격파했고, 포위되어 고립된 고메스는 항복하며 빌라 드 카시아스를 정부군에 넘겨주었습니다. 이것이 끝의 시작이었습니다.

1840년, 새로 즉위한 황제 도르 페드루 2세(Dom Pedro II)는 항복하는 반군에게 사면을 선언했고, 즉시 2,500명이 넘는 발라요 세력이 투항했습니다.

이에 루이스 알베스 드 리마 이 실바는 1841년 계속 저항하던 세력을 완전히 진압했습니다. 같은 해 코즈메 벤투는 체포되어 교수형에 처해졌으며, 라이문두 고메스는 주에서 추방되어 상파울루로 가던 도중 생을 마감했습니다.

승리의 기세로 수도로 돌아온 대령은 이 사회 봉기를 진압한 공로로 카시아스 남작(Barão de Caxias) 작위를 받았습니다.

알아두면 좋은 정보

현재 브라질 카시아스 시에는 이 반란의 역사를 온전히 기록한 발라야다 기념관(Memorial da Balaiada)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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