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메리카의 역사

브라질 이사벨 공주: 노예 해방의 '황금법'에 서명한 마지막 제국 공주

이사벨 공주(Princess Isabel), 즉 이자벨 드 브라간사(Isabel de Bragança) 혹은 '브라질의 이자벨'은 브라질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여성 인물 중 한 명입니다.

그녀는 브라질 최초로 국정을 통치한 여성으로, 제국의 섭정을 맡았으며 브라질의 마지막 제국 공주이기도 했습니다.

페드루 2세 황제(Dom Pedro II)의 해외 순방 때마다 세 차례에 걸쳐 섭정 자리에 올랐으며, 마지막 섭정 기간에는 브라질의 노예제를 폐지한 황금법(Lei Áurea)에 서명했습니다.

생애

이자벨 크리스티나 레오폴디나 아우구스타 미카엘라 가브리엘라 라파엘라 곤자가 데 부르봉 이 브라간사(Isabel Cristina Leopoldina Augusta Micaela Gabriela Rafaela Gonzaga de Bourbon e Bragança)는 1846년 7월 29일 리우데자네이루의 상크리스토방 궁전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브라질 황제 페드루 2세와 황후 테레자 크리스티나(Dona Teresa Cristina) 사이에서 태어난 첫째 딸이었습니다. 둘째 딸인 레오폴디나 공주(1847~1871)는 그녀의 평생의 동반자였으며, 유아기에 요절한 두 명의 남동생도 있었습니다.

브라질 이사벨 공주: 노예 해방의  황금법 에 서명한 마지막 제국 공주

왕실의 딸답게 그녀는 궁정에서 여러 스승들의 지도 아래 철저한 교육을 받았고, 이를 통해 폭넓은 일반 교양과 외국어 실력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1860년, 헌법이 규정한 나이인 14세에 그녀는 왕위 계승자로서 정식 서약을 하며 공식적으로 후계자의 지위에 올랐습니다.

결혼

1864년, 그녀는 프랑스 왕자 루이 필리프 마리 페르낭 가스탕 도르레앙(Luís Filipe Maria Fernando Gastão de Orléans)과 결혼했습니다. 그는 '오르레앙의 가스탕', 즉 외 백작(Conde d'Eu)이라는 이름으로 더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한편 그녀의 여동생 레오폴디나 공주는 가스탕의 사촌인 작센코부르크고타 공 루이 아우구스투 마리 에우데스와 결혼했습니다.

이 결혼에서는 세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바로 페드루 지 알칸타라 왕자, 루이스 마리아 필리프 왕자, 안토니우 가스탕 프란시스코 왕자입니다.

이자벨 공주는 남편과 함께 유럽 각국의 궁정을 방문하며 포르투갈, 스페인, 프랑스, 영국에서 환영받았습니다. 또한 브라질 내 여러 주도와 도시들을 직접 순방하기도 했습니다.

브라질에서 그녀는 노예 해방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며, 결혼식 날 자신이 거느리던 노예들을 해방시켰고 평소에도 교육 문제에 깊은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망명

공화정 쿠데타로 공화국이 선포되면서 제국 일가는 1889년 11월 브라질에서 추방되었습니다. 이자벨은 가족과 함께 프랑스의 외 성(Château d'Eu)에 정착하여 살았습니다.

그녀는 1921년 11월 14일 프랑스에서 생을 마쳤으며, 끝내 브라질 땅을 다시 밟지 못했습니다.

노예제 폐지

브라질 이사벨 공주: 노예 해방의  황금법 에 서명한 마지막 제국 공주

이자벨 공주는 브라질 노예제 폐지 과정에 깊이 관여했습니다. 그녀는 대중적인 폐지론 운동과 연대하고 앙드레 헤보우사스(André Rebouças)와 같은 운동가들을 만났으며, 늘 책상 위에 동백꽃 한 송이를 두었다고 전해집니다. 동백꽃은 당시 폐지론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녀는 노예 해방과 관련된 주요 법률들에 서명했습니다. 1871년 9월 28일 공주가 서명한 자유태법(Lei do Ventre Livre, 제2040호)은 그날 이후 태어나는 노예의 자녀들에게 자유를 부여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1888년 5월 13일 서명된 황금법(Lei Áurea, 제3353호)은 300년 가까이 이어져 온 브라질의 노예 노동을 완전히 종식시켰습니다.

이 법 덕분에 그녀는 '노예 해방자(A Redentora)'라는 별명을 얻었지만, 동시에 지배 엘리트층의 깊은 반감을 샀습니다. 이자벨 공주는 토지 개혁과 여성 참정권의 강력한 지지자이기도 했습니다.

흥미로운 사실

  • 25세였던 1871년, 이자벨 공주는 1824년 브라질 헌법에 따라 브라질 최초의 여성 상원의원이 되었습니다. 또한 할머니인 레오폴디나 황후와 고조모인 마리아 1세 여왕에 이어 브라질 역사상 세 번째 여성 국가원수이자 정부수반이기도 했습니다.
  • 결혼 후 이자벨 공주의 풀네임은 '이자벨 크리스티나 레오폴디나 아우구스타 미카엘라 가브리엘라 라파엘라 곤자가 데 브라간사 이 부르봉 도르레앙'이 되었습니다.
  • 5월 13일은 '노예 해방 기념일'로, 이자벨이 '황금법'에 서명하여 브라질의 노예제를 종식시킨 날을 기념합니다.
  • '아우레아(Áurea)'는 금을 뜻하는 말로, 브라질의 노예 노동을 끝낼 법을 상징하기 위해 선택된 이름입니다.
  • 그녀의 유해는 남편인 외 백작과 함께 리우데자네이루주 페트로폴리스 대성당 영묘에 안치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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