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리아노 페이소토(Floriano Peixoto)는 '철의 원수(Marechal de Ferro)'라는 별명으로 널리 알려진 군인이자, 브라질 공화국의 제2대 대통령입니다. 그는 공화정 체제를 안정적으로 정착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한 인물로 평가받습니다.
그는 데오도루 다 폰세카(Deodoro da Fonseca)와 함께 '검의 공화국(República da Espada)'이라 불리는 시기(1889~1894)에 속합니다. 이 시기에는 초대 대통령과 제2대 대통령이 모두 군인 출신이었기 때문입니다.
플로리아노 페이소토는 브라질의 제2대 대통령이었다.
생애와 군 경력
플로리아노 비에이라 페이소토(Floriano Vieira Peixoto)는 1839년 4월 30일, 마세이오(Maceió)의 이피오카(Ipioca)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가난한 가정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대부(代父)인 조제 비에이라 지 아라우조 페이소토 대령(Colonel José Vieira de Araújo Peixoto)의 손에서 자랐습니다.
처음에는 마세이오에서 공부했으며, 이후 리우데자네이루의 상 페드루 지 알칸타라 학교(Colégio São Pedro de Alcântara)로 진학해 교육을 이어갔습니다.
16세가 되던 해 리우데자네이루 육군사관학교(Escola Militar do Rio de Janeiro)에 입교하며 군 경력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소위, 육군 소장, 중령으로 승진하며 군에서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특히 중령 시절 파라과이 전쟁에서 제9보병연대를 지휘하며 뛰어난 지휘 능력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1895년 6월 29일, 리우데자네이루 주 바라 만사(Barra Mansa)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플로리아노 페이소토 정부
플로리아노는 정치와 군 분야 모두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마투그로소 주지사를 역임했습니다. 임시정부 시기였던 1890년에는 육군장관으로 선출되었고, 이듬해인 1891년에는 데오도루 다 폰세카 원수(1827~1892)의 부통령으로 당선되었습니다.
1891년 11월 23일, 데오도루 다 폰세카가 사임하자 부통령 자격으로 브라질 대통령직을 승계했습니다.
재임 기간 동안 그는 단호하고 강경한 통치 방식을 유지했습니다. 당시 브라질은 공화국 선포(1889) 이후 심각한 경제적·정치적 위기를 겪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정당성 논란
하지만 많은 이들이 그의 집권에 반대했습니다. 직접 선거 없이 부통령 자리에 올랐기 때문에 그의 임기가 정당하지 않다고 여겨졌고, 새로운 선거를 실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의 원수'는 1891년부터 1894년까지 집권하며 대중을 배려하는 정책을 추진했습니다. 세금을 인상하지 않고 물가와 주거 비용을 낮추면서 국민들로부터 큰 호응과 존경을 받았습니다.
반발과 반란
반면, 이러한 포퓰리즘적 정책은 국내 엘리트층, 특히 자유주의적이고 분권적인 커피 과두정치 세력의 반감을 샀습니다.
이로 인해 전국 곳곳에서 반란이 일어났습니다. 대표적으로 리우그란지두술에서 연방주의자와 공화파 간의 대립으로 촉발된 연방주의 혁명(Federalist Revolution, 1893~1895)이 있으며, 리우데자네이루에서 해군이 주도한 무장 반란(Revolta Armada, 1893)도 있었습니다. 플로리아노는 이러한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무력과 강경책을 과감히 사용했습니다.
임기 말기에 그는 공직과 정치 일선에서 물러났으며, 1894년 11월 15일 상파울루 출신의 프루덴치 드 모라이스(Prudente de Morais, 1841~1902)가 새 대통령으로 취임하며 문민 정부 시대가 열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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