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메리카의 역사

프레스테스 종대: 브라질 구공화국을 뒤흔든 29개월의 대행진

프레스테스 종대(Coluna Prestes)는 브라질 역사에서 '구공화국'이라 불리는 시기, 즉 아르투르 베르나르지스 대통령 집권기인 1925년부터 1927년까지 전개된 정치·군사적 성격의 테넨티스모(tenentismo) 운동을 대표하는 사건입니다.

주요 목표

프레스테스 종대가 내세운 핵심 요구는 다음과 같습니다.

  • 교육 개혁: 공립학교와 초등교육에 대한 보편적 접근 확대
  • 사회 개혁: 사회 불평등의 철폐
  • 정치 개혁: 민주주의 실현과 비밀투표 도입
  • 언론의 자유 보장
  • 지방 유력자 '콜로넬(coronel)'의 착취와 공개 투표 방식인 '카브레스투 표(voto de cabresto)' 제도 폐지

운동의 주축은 대위·중위 등 젊은 군 장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당시 정치 권력 구조에 깊은 불만을 품고 현직 대통령의 퇴진과 더불어 국가 정치를 지배해 온 농업 올가르히(지방 엘리트) 세력의 몰락을 강력히 요구했습니다.

실제로 1922년 코파카바나 요새 반란('18인의 코파카바나')을 필두로, 1924년 혁명, 마나우스 코뮌, 그리고 프레스테스 종대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의 군사 봉기가 잇달았습니다.

프레스테스 종대의 결성과 대행진

종대의 모태는 상파울루 출신(파울리스타)과 히우그란지두술 출신(가우쇼) 병력의 연합이었습니다. 1924년 상파울루에서는 이시도루 디아스 로페스 장군과 미구엘 코스타가 이끄는 군사 봉기, 이른바 '1924년 혁명'이 일어났고, 정부군에 밀려 수도에서 철수한 뒤 남부에서는 루이스 카를로스 프레스테스, 시케이라 캄포스, 주앙 알베르투가 이끄는 부대가 합류했습니다.

양측 병력은 파라나에서 만나 하나의 부대로 통합되었고, 이것이 곧 '프레스테스 종대'로 불리게 된 대행진의 출발점이었습니다. 그들이 추구한 궁극적인 목표는 단 하나, 정권 타도였습니다.

약 1,500명의 병력이 히우그란지두술주 아레그레티에서 출발한 이 행진은 29개월간 이어졌습니다. 이들은 도보와 기마로 브라질 내륙 약 25,000km를 종단하며 무려 11개 주(히우그란지두술, 파라나, 마투그로수, 고이아스, 미나스제라이스, 바이아, 피아우이, 마라냥, 세아라, 페르남부쿠, 히우그란지두노르치)를 통과했습니다. 행진 중에는 정치 선전 활동과 집회를 통해 자신들의 이상을 널리 알렸고, 기습·기만 전술을 활용해 정부의 정규군을 여러 차례 격파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약 2년 반에 걸친 긴 행진 끝에도 테넨티스모의 핵심 목표는 이루어지지 못했고, 운동은 해체의 길을 걷습니다. 행진은 1927년 2월 볼리비아 국경에서 공식적으로 마무리되었으며, 지도부는 망명길에 올랐습니다.

그럼에도 프레스테스 종대가 남긴 발자취는 결코 작지 않습니다. 이 운동은 이후 1930년 혁명과 게툴리우 바르가스의 집권으로 이어지는 결정적 토대가 되었고, 결과적으로 구공화국의 종말을 앞당겼습니다. 지도자들의 행로는 서로 갈렸는데, 미구엘 코스타는 아르헨티나로, 루이스 카를로스 프레스테스는 볼리비아를 거쳐 아르헨티나로 망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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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두면 흥미로운 사실들

  • 테넨티스모 진영은 중위·하사·상병·병사는 물론 정치인, 공무원, 소규모 지주, 일반 노동자 등 다양한 계층으로 구성되었으며, 여성 일부도 행진에 동참했습니다. 핵심 병력은 약 200명 규모였고, 지지 세력은 최대 1,500명까지 오르내리며 변동을 거듭했습니다.
  • 히우그란지두술주 산투안젤루에 위치한 '프레스테스 종대 기념관(Memorial da Coluna Prestes)'은 루이스 카를로스 프레스테스가 국내 북부 행진을 계획한 장소입니다. 건축가 오스카르 니메예르가 설계한 이곳에는 프레스테스 종대 운동을 기리는 박물관이 들어설 예정이었으며, 2014년 말 문을 열 계획이었습니다.
  • 행진 과정에서 빈곤, 콜로넬들의 횡포, 농업 엘리트에 쏠린 권력이 초래한 사회 불평등을 대담하게 고발한 루이스 카를로스 프레스테스는 '희망의 기사(Cavaleiro da Esperança)'라는 별명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