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부터 18세기까지 브라질 식민지 내륙에서 수행된 엔트라다(Entradas)와 반데이라(Bandeiras)는 전략적·경제적 목적을 지닌 탐사 원정이었다. 바로 이 원정들을 통해 브라질 영토의 확장과 정복이 가능해졌다.
공통된 주요 특징
이 원정들은 여러 공통점을 지녔다. 특히 사냥, 낚시, 카사바(마니옥)와 일부 과일에 의존하는 빈약한 식량 생활, 그리고 몇 년씩 지속되기도 하는 긴 여정이 대표적인 고난이었다.
원정대원들의 주요 무기는 활과 머스킷총 같은 초기 화기였다. 열악한 위생 환경, 각종 질병, 야생동물과 원주민의 공격 등으로 여정은 극도로 고통스러웠으며, 수많은 대원들이 목숨을 잃었다.
특히 수로를 따라 진행된 원정은 '몬상(monsoes)'이라 불렸으며, 육상 원정에 비해 훨씬 잘 조직된 것이 특징이었다.
엔트라다(Entradas)의 주요 특징
엔트라다는 포르투갈 왕실이 직접 조직하고 재정을 지원한 공식 원정으로, 원칙적으로 토르데시야스 조약이 정한 경계를 존중했다.
이들의 최우선 임무는 새로 발견된 영토를 지도에 담아내고, 해안을 넘어 내륙까지 식민지화를 확대하는 것이었다.
아울러 금과 보석의 존재를 확인해야 했으며, 식민 지배에 저항하는 원주민과 유럽 경쟁 세력, 특히 네덜란드인에 맞서는 전투에도 동원되었다.
이 원정은 해안에서 서쪽, 즉 식민지 내륙을 향해 진출했으며, 수백 명 규모에 이르기도 한 대원들은 대부분 포르투갈 군인과 백인 브라질인이었다.
1548년, 초대 총독으로 임명된 토메 드 수자(Tomé de Sousa)가 금·은 광산 발견이라는 임무를 안고 브라질에 도착했다.
몇 년 뒤인 1550년에는 두아르트 드 레모스(Duarte de Lemos) 선장이 식민지에 금이 존재한다는 증거가 있다고 본국 궁정에 보고하기에 이른다.
1554년에는 프란시스코 브루조 데 에스피노사(Francisco Bruzo de Espinosa)의 지휘 아래 원정대가 바이아를 출발해 파르두 강, 제키치노냐 강, 상프란시스쿠 강을 따라 내륙을 가로질러 오늘날 미나스제라이스 주 지역까지 도달했다.
17세기에 들어서면서 포르투갈 왕실은 점차 금과 보석 탐사에 정책의 우선순위를 두게 되었다.
반데이라(Bandeiras)의 주요 특징
반데이라 원정은 토르데시야스 조약의 경계를 무시하고 스페인령 영토까지 침범했기 때문에 브라질 영토 확장의 실질적 주역이 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포르투갈 왕실의 공식 후원을 받지 못했으며, 비용은 전적으로 민간 사업가들이 부담했다.
다만 이런 형태의 원정은 이베리아 연합이 종결된 1640년과 네덜란드인이 브라질에서 축출된 1654년 이후 본격적으로 활발해졌다.
반데이라의 구성은 일반적으로 소수의 백인(대부분 브라질 출신)과 다수의 메스티소, 원주민으로 이루어졌다.
규모는 소수의 개척자 집단에서 수천 명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는데, 특히 원주민들은 생계 농업은 물론 전투, 길 안내, 경비 임무까지 담당했다.
개척자들은 금속, 보석, 그리고 내륙('세르탕')의 약용 식물과 향료를 찾는 광물 탐사형 반데이랑티즘에 종사했을 뿐만 아니라, 원주민 포획을 목적으로 하는 포획형 반데이랑티즘, 도망친 아프리카 노예의 체포, 킬롱보(도망 노예 공동체)와 적대적 원주민 소탕을 위한 계약형 반데이랑티즘에도 관여했다.
상비센테와 상파울루를 출발한 이 원정들은 세라두마르 산맥을 넘어 티에테 강과 그 지류의 항해를 적극 활용하며 브라질 중서부와 남부 지역으로 나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