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보아바 전쟁이란?
엠보아바 전쟁(War of the Emboabas)은 1707년부터 1709년까지 약 2년간 벌어진 무력 분쟁으로, 상파울루의 개척자들(파울리스타)이 발견한 미나스제라이스 지역 금광의 채굴권을 두고 일어난 사건입니다.
금광 감독관이자 파울리스타의 지도자였던 마누엘 데 보르바 가투(Manuel de Borba Gato)의 지휘 아래, 개척자들은 해당 지역 금광에 대한 독점적 채굴권을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엠보아바(emboabas)'라 불린 외지인들—부츠를 신고 다녔다는 이유로 멸칭으로 불린 이들—은 부유한 상인 마누엘 누네스 비아나(Manuel Nunes Viana)가 이끌었으며, 주로 포르투갈 본토 출신과 식민지 타 지역에서 온 이주민들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이들은 개척자들의 권위에 정면으로 도전했고, 결국 파울리스타들을 패배시켜 추방하는 데 성공합니다.
주요 원인과 결과
17세기 미나스제라이스 지역에서 금이 발견되면서 수만 명의 사람들이 광산 중심지로 몰려들었습니다. 이들 광부 대부분은 북동부 지역 출신으로, 그곳에서는 포르투갈인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컸습니다. 반면 금광 지역은 상파울루 개척자들이 장악하고 있던 상비센트 카피타니아에 속해 있었고, 개척자들은 금을 나눌 생각이 없었습니다.
더욱이 인구 급증으로 물자 공급 위기가 발생하자, 상인들은 이를 절호의 수익 기회로 여겨 마을에 식량을 공급하는 식품 무역 독점, 특히 도축용 가축 공급권을 차지하려 했습니다. 결국 금광 채굴권의 독점과 생필품 유통권을 둘러싼 갈등이 이 전쟁의 핵심 원인이 되었습니다.
엠보아바 전쟁이 남긴 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 리우데자네이루, 미나스제라이스, 상파울루 카피타니아의 분리
- 상파울루의 도시 승격
- 포르투갈 왕실이 미나스제라이스 지역 금광 채굴권을 직접 장악
- 패배한 상파울루 개척자들이 고이아스와 마투그로수 지역으로 이주하여 새로운 금광 발견
- 광구(채굴 구획) 배분 규정 제정
- 금 채굴량의 5분의 1('킨투')을 왕실에 납부하는 제도 시행
역사적 배경
1707년부터 엠보아바 세력은 파울리스타들의 광산 지역 장악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군사 원정을 감행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주로 마멜루코(혼혈)와 원주민으로 구성되어 포르투갈어를 거의 구사하지 못하던 상파울루 주민들은 엠보아바에게 종속되었고, 엠보아바는 광산에 물자를 공급하는 상업을 통제하게 되었습니다.
1708년 11월, 엠보아바는 미나스제라이스 카피타니아 오루프레투 관할의 카셰이라두캄푸에 정착해 있던 파울리스타들을 대대적으로 공격하여 개척자들을 추방했고, 식민지 3대 광산 지역 중 2곳을 손에 넣었습니다. 이후 자신들의 지도자 누네스 비아나를 광산 지역 총독으로 임명했는데, 이 조치는 포르투갈 왕실의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켰습니다.
1709년, 왕실과 리우데자네이루 총독 안토니오 드 알부케르키 코엘류 드 카르발류(Antonio de Albuquerque Coelho de Carvalho)의 개입으로 누네스 비아나는 해임되어 광산 지역에서 축출되었고, 상프란시스쿠 강변에 있는 자신의 농장으로 피신했습니다. 이로써 엠보아바 전쟁은 최종적으로 막을 내리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