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메리카의 역사

마리아 퀴테리아: 브라질 최초의 여성 군인, 독립을 위해 싸우다

마리아 퀴테리아 지수스(Maria Quitéria de Jesus, 1792~1853)는 바이아 지역에서 브라질 독립을 위해 싸운 브라질의 군인입니다. 그녀는 브라질 역사상 최초로 군 부대에 입대한 여성으로, 오늘날까지 국가적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습니다.

마리아 퀴테리아는 누구인가?

마리아 퀴테리아는 1792년 바이아주 페이라지산타나에서 태어났습니다. 부모와 함께 살았지만 열 살 무렵 어머니를 잃고 자랐습니다.

도무 페드루가 브라질의 독립을 선포하자, 바이아에 주둔하던 포르투갈군은 그를 황제로 인정하기를 거부했습니다. 이에 따라 남성 인구에게 입대해 싸워줄 것을 호소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그리하여 마리아 퀴테리아의 아버지에게도 가족 중 한 명을 전쟁에 내보내 달라는 요청이 있었지만, 그에게는 징집 연령에 해당하는 자녀가 없었습니다. 바로 그 순간, 마리아 퀴테리아가 스스로 나서서 대대에 동행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예상대로 아버지는 딸의 결심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퀴테리아는 자매의 집으로 피신한 뒤 매부의 옷을 갈아입고 머리를 자르는 등 남장을 하고 '프린시페 도무 페드루 의용 엽병대대'에 입대하는 데 성공합니다.

이때부터 마리아 퀴테리아는 '메데이루스 병사'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전투 참여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정체는 결국 드러나고 말았습니다. 흥미롭게도 예상과 달리 퀴테리아는 대대에서 추방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제복 위에 치맛자락을 더 입고 남성들과 함께 계속 전투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마리아 퀴테리아는 남성 병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여러 전투에 참전했는데, 그중에서도 일랴지마레, 콘세이상, 이타푸안, 피투바 전투가 특히 유명합니다. 특히 피투바 전투에서는 적의 참호를 공격해 포르투갈 병사 두 명을 직접 포로로 잡는 활약을 펼쳤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인 1823년, 마리아 퀴테리아는 도무 페드루 1세 황제로부터 남십자 제국 훈장을 받는 영예를 안았습니다. 이 자리에서 그녀는 황제에게 아버지에게 용서를 구하는 내용의 편지를 써 달라고 부탁했다고 전해집니다.

이후 그녀는 군에서 제대했으며 소위(알파레스) 계급으로 예편되었습니다. 마리아 퀴테리아는 결혼하여 딸 하나를 낳았고, 1853년 바이아 살바도르 근교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브라질 육군은 그녀의 공헌을 기리며 장교 보충 참모부의 수호 인물로 삼고 있습니다. 그녀는 여성의 군 복무 상징으로서 오늘날에도 큰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마리아 퀴테리아의 삶과 역사적 배경

당시 브라질은 1808년 포르투갈 왕실의 도래와 항구 개항을 계기로 중요한 정치적·경제적 변화를 겪고 있었습니다.

이후 1820년 도무 주앙 6세가 포르투갈로 귀환하면서 후계자인 아들을 브라질에 남겨두었고, 이는 브라질 사람들로 하여금 포르투갈로부터 독립할 가능성을 진지하게 고민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822년 9월 7일, 도무 페드루는 브라질의 독립을 공식적으로 선포했습니다. 이후 떠나기를 거부하는 포르투갈군을 축출하기 위해 여러 의용병 대대가 조직되었고, 마리아 퀴테리아도 그중 한 곳에 몸을 담게 된 것입니다.

널리 알려진 통념과 달리 브라질의 독립 과정은 결코 평화롭지 않았습니다. 특히 북동부와 바이아 지역에서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으며, 전쟁은 1823년 7월 2일에야 비로소 막을 내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