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통합주의 행동(Ação Integralista Brasileira, AIB)은 1932년 플리니우 살가두(Plínio Salgado)가 창당한 정치 조직으로, 브라질 역사상 최초의 대중 정당이었다.
초기에는 바르가스(Vargas) 정부를 지지했다. 그러나 1937년 '이스타두 노부(Estado Novo, 신국가 체제)'가 수립되면서 정세는 급반전되었고, 통합주의자들은 1938년 5월 11일 정부 전복을 노린 '통합주의 봉기'를 일으켰다.
반공산주의와 반자유주의를 기치로 내걸었던 통합주의는 브라질에서 나타난 파시즘 운동으로 평가된다.
브라질 통합주의 행동 개요

브라질 통합주의 행동은 1932년 상파울루 출신의 플리니우 살가두가 발표한 '10월 선언문'과 함께 창설되었다.
살가두는 1922년 상파울루 현대미술 주간(모더니즘 예술 행사)에 참여했던 인물로, 이후에는 현대 미술과 그 원칙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했다.
독학으로 학문을 쌓은 그는 언론인으로 활동했으며, 1928년 연방 하원의원에 당선되었다. 또한 공산주의 사상에 맞서는 보수 세력을 규합한 '정치연구회'를 설립하기도 했다.
플리니우 살가두에 따르면 인간은 더 높은 목적을 위해 존재하며, 당장의 욕구 충족에만 몰두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따라서 물질만능주의와 무신론은 반드시 맞서 싸워야 할 대상이었다.
그는 1934년 헌법제정의회 의원으로 선출되었고, 이후 대통령 선거에도 출마했으나 1937년 제툴리우 바르가스가 일으킨 쿠데타로 선거가 중단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통합주의자들이 이 쿠데타를 지지했다는 사실이다. 당시 육군 대위였던 소속 멤버 올림피우 모라웅 필류(Olimpio Mourão Filho)가 '코엔 계획(Cohen Plan)'을 작성했는데, 이것이 바르가스가 독재 체제를 수립하는 명분이 되었다.
AIB는 바르가스 정부에 편입되기를 기대했지만, 1937년 헌법에 따라 브라질의 다른 모든 정당들과 마찬가지로 해체되고 말았다.
플리니우 살가두 외에도 이 운동의 핵심 인물로는 구스타부 바호주(Gustavo Barroso), 아비아스 나시멘투(Abdias Nascimento), 주앙 칸디두(João Cândido), 발테르 모레이라 살리스(Walther Moreira Salles), 마갈량스 핀투(Magalhães Pinto), 산티아구 단타스(Santiago Dantas) 등이 있다.
통합주의와 AIB의 특징
1930년대에는 전 세계적으로 파시즘과 사회주의 사상 간의 극심한 대립이 벌어졌고, 브라질 역시 이 흐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통합주의는 당시 이탈리아에서 힘을 얻던 파시즘 사상에서 영감을 받았다. 민족주의를 옹호했고, 여성과 흑인의 정치 참여(당시 다른 정당에서는 불가능했던 일)를 지지했으며, 공산주의와 자유주의에 맞섰다.
또한 당시 난립하던 여러 정당들을 폐지하고, 그 대안으로 '유기적 민주주의'를 제안했다.
브라질 통합주의 행동은 거의 모든 주에 지부를 두었으며, 국민해방동맹(ANL)의 강력한 적수였다. 회원 수는 50만 명에서 10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AIB를 상징하는 요소들을 살펴보자.
인사말
'아나우에(Anauê)'는 투피어(Tupi)에서 유래한 말로, 통합주의자들의 인사말이었다. "너는 나의 형제다"라는 뜻을 담고 있으며, 유럽의 파시스트들처럼 팔을 들어 올리며 외쳤다.

구호
"신, 조국, 가족(God, Fatherland and Family)"이었다.
제복
AIB 회원들은 녹색 셔츠를 제복으로 선택했기 때문에 '녹색 셔츠(green shirts)'로 널리 알려졌으며, 경멸적으로는 '녹색 닭(green chickens)'이라 불리기도 했다.
상징과 깃발
브라질 통합주의 행동의 상징은 그리스 문자 시그마(Σ)로, 수학에서 '합'을 의미한다. 깃발은 파란 바탕 중앙에 흰 원을 두고, 그 안에 시그마를 배치한 형태였다.

1938년 통합주의 봉기
바르가스의 배신과 정당 해체에 직면한 일부 통합주의자들은 무기를 들고 정부 전복을 결행하기로 했다.
1938년 5월 11일, 한 무리의 무장 세력이 대통령 제툴리우 바르가스의 관저인 과나바라 궁(Guanabara Palace)으로 향해 정원 진입에 성공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대통령과 가족이 머무르던 저택을 향해 총격을 시작했다.
그러나 봉기 세력은 신속하게 진압되었고, 1,500명 이상이 체포되었다. 플리니우 살가두는 이 행동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이념적으로 지지했다. 이 때문에 그는 망명형을 선고받아 포르투갈로 떠났다. 당시 포르투갈은 독재자 올리베이라 살라자르(Oliveira Salazar)가 통치하던 나라로, 살가두는 1946년에야 비로소 브라질로 돌아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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