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독립전쟁이 한창이던 시기, 대륙회의(Continental Congress)는 전쟁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채권을 발행했습니다. 이 채권은 본질적으로 미국 시민들과 외국 정부가 새로 태어나는 국가에 빌려준 돈, 즉 전쟁 자금 융자였습니다. 정부는 전쟁이 끝나면 이자와 함께 상환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신생 국가의 불안정한 재정 상황 때문에 많은 채권이 제대로 상환되지 못했거나 아예 갚지 못한 채 방치되었습니다.
약속과 달랐던 현실: 상환받지 못한 채권자들
채권을 보유하고 있던 군인과 일반 시민들은 정부가 보상해 주겠다고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투자한 금액을 온전히 돌려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연방 정부가 미지급 채무에 대한 책임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기 전까지 오랫동안 지속되었습니다.
1790년, 해밀턴의 '주(州) 부채 승인' 정책
전환점은 1790년 찾아왔습니다. 초대 재무장관 알렉산더 해밀턴(Alexander Hamilton)이 주(州) 부채 승인(Assumption of State Debt) 정책을 시행하면서, 연방 정부가 각 주가 진 빚까지 떠안게 되었고, 독립전쟁으로 인한 미지급 채무도 마침내 연방 차원에서 처리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큰 논란을 낳은 결정
당시 이 정책은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각 주의 막대한 부채를 연방 정부로 이전하는 것은 연방 정부의 부채 부담을 키우고 추가 세금을 필요로 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 부채 승인은 연방 정부의 신용도를 확립하고 국가 재정을 안정시키는 데 필수적인 조치로 평가받으며, 미국 재정 제도의 기초를 다지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수십 년에 걸친 상환과 남겨진 유감
결국 미국이 독립전쟁 중 발생한 부채를 완전히 갚는 데에는 수십 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많은 채권자들은 자신이 감수한 투자에 대한 충분한 보상을 끝내 받지 못한 채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