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메리카의 역사

바르가스 시대: 브라질 근대사를 바꾼 게툴리우 바르가스의 통치

바르가스 시대란?

바르가스 시대(Era Vargas)는 게툴리우 바르가스(Getúlio Vargas, 1882~1954)가 브라질을 통치한 시기로, 크게 세 단계로 구분됩니다.

  1. 임시정부: 1930~1934년
  2. 헌정정부: 1934~1937년
  3. 에스타두 노부(신국가): 1937~1945년

임시정부 (1930~1934)

임시정부는 권력 중앙집권화 과정이 시작되고, 연방·주·지방 차원의 입법기관이 해체되며 선거가 치러지지 않은 시기라는 특징이 있습니다.

또한 1930년에는 노동·산업·상공부와 교육·보건부 등 새로운 부처가 신설되었습니다.

이러한 조치에 더해 각 주에 정부 개입자를 임명하면서 여러 주에서 불만이 고조되었습니다. 특히 상파울루주는 무기를 들고 바르가스 정권에 맞섰는데, 이것이 이른바 '입헌혁명(Revolução Constitucionalista)'으로 알려진 봉기입니다.

1932년 입헌혁명 이후 바르가스는 입법 선거를 실시하고, 1934년 새 헌법을 제정하기 위한 제헌의회를 소집해야 했습니다.

이 헌법에는 여성 참정권 도입, 무상 의무 초등교육 확립, 노동법원 설립 등 중요한 정치적 변화가 담겼습니다.

바르가스 시대: 브라질 근대사를 바꾼 게툴리우 바르가스의 통치

헌정정부 (1934~1937)

헌정정부 시기에는 정부에 반대하는 공산주의 봉기, 이른바 '인텐토나(Intentona)'가 일어났습니다.

브라질 공산당(PCB)은 1927년부터 불법화되어 있었고, 당원 다수가 국민해방동맹(ANL)에 참여했습니다. 그러나 ANL 역시 해체되었고 많은 회원들이 박해를 받았습니다.

PCB와 ANL의 일부 세력은 무력으로 권력을 장악하려 했고, 이후 루이스 카를루스 프레스치(Luís Carlos Prestes, 1898~1990)가 이끄는 1935년의 공산주의 봉기를 기도했습니다. 쿠데타는 실패로 돌아갔고, 필린투 뮐레르(Filinto Müller, 1900~1972)가 이끄는 정치경찰에 의한 고문과 불법 체포를 포함한 강력한 탄압이 이어졌습니다.

2년 후인 1937년, 바르가스는 또 다른 공산주의 쿠데타 기도, 이른바 '코헨 계획(Cohen Plan)'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것이 의회 폐쇄, 대통령 선거 무효화, 1934년 헌법 폐지의 명분이 되었습니다.

실제로 이 계획은 바르가스의 동맹이자 인테그랄리스트 대위인 올림피우 모랑 필류(Olímpio Mourão Filho, 1900~1972)가 작성한 것으로, 정부는 이를 계엄 선포와 에스타두 노부 출범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이용했습니다.

에스타두 노부 (1937~1945)

바르가스 시대: 브라질 근대사를 바꾼 게툴리우 바르가스의 통치

에스타두 노부(Estado Novo)는 역사적으로 상반된 평가를 받습니다.

1937년 헌법이 선포된 이 시기는 바르가스 시대 중 가장 억압적이고 독재적인 시기로 간주됩니다. 동시에 노동자 권리가 창출된 '황금기'로 회고되기도 합니다.

새 헌법은 정당을 해산하고 조합주의 체제를 도입했으며, 입법·행정·사법 삼권의 독립성을 종식시켰습니다. 1926년 폴란드 헌법에서 영감을 받았기 때문에 '폴란드 헌법'이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또한 1937년 11월부터 바르가스는 언론이 정부 비판을 보도하지 못하도록 검열을 실시했습니다.

1938년에는 정부의 중앙집권적 노선에 분노한 브라질 인테그랄리스트 행동(Ação Integralista Brasileira)이 쿠데타를 기도합니다. 플리니우 살가두(Plínio Salgado, 1895~1975)와 구스타부 바호주(Gustavo Barroso, 1888~1959)가 이끄는 인테그랄리스트들은 권력 장악을 시도했으나 패배하였고, 참가자들은 투옥 또는 추방되었습니다.

경제 분야에서 바르가스 시대는 국유화 정책이 특징이며, 노동법 통합법전(CLT) 제정을 통해 노동 정책을 추진했습니다. 입법 분야에서는 형법과 형사소송법도 제정했습니다.

바르가스 시대와 제2차 세계대전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브라질은 유럽 분쟁에 대해 중립을 유지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러나 정부 내부에는 추축국을 지지하려는 세력과 연합국 쪽으로 접근하려는 세력이 공존했습니다.

미국의 압박 끝에 바르가스는 결국 독일에 선전포고를 하고, 이후 병력을 유럽에 파병하며 나탈(RN)에 미군 항공기지를 제공하기로 했습니다.

그 대가로 미국으로부터 차관을 지원받았고, 브라질 육군의 무장 현대화도 이루어졌습니다.

바르가스 시대의 종언

독재와 싸운다는 명분과 민주주의 없는 체제 속에 산다는 모순이 바르가스 시대의 끝을 예고했습니다.

여러 지식인들, 학생 단체, 심지어 군부의 일부까지 바르가스 정권에 공개적으로 반발하기 시작했습니다.

1945년 10월 29일, 게툴리우 바르가스는 군사 쿠데타와 국민민주연합(UDN)에 의해 축출되어 고향인 상보르자(São Borja/RS)로 물러났습니다.

바르가스 시대: 브라질 근대사를 바꾼 게툴리우 바르가스의 통치

그러나 1951년, 그는 브라질 노동당(PTB) 소속으로 출마해 대통령직에 복귀합니다. 국민 직접 투표로 얻은 이 임기에서 그는 페트로브라스(Petrobras) 설립의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바르가스는 1954년 8월 24일 카테테 궁에서 가슴에 총을 겨눠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그의 유서는 이 결심의 이유를 다음과 같은 유명한 문장으로 남겼습니다. "나는 역사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내 생명을 남긴다."

바르가스 시대에 대한 흥미로운 사실

  • 게툴리우 바르가스는 지도자에 대한 우상화를 도입했으며, 그를 찬양하는 대규모 시민 퍼레이드와 집회가 열렸고, 이 집회의 합창은 여러 차례 헤이토르 빌라로부스(Heitor Villa-Lobos)가 지휘했습니다.
  • 바르가스 시대는 최저임금 제정, 노동법(CLT) 시행, 근로수첩 발급, 주 48시간 근무제와 유급 휴가 도입 등 노동 관련 법률로 특징지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