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스 핀타다스(Caras Pintadas, 그려진 얼굴)는 1992년 브라질에서 일어난 학생 운동을 가리키는 이름입니다.
이 운동은 당시 페르난도 콜로르 지 멜루(Fernando Collor de Mello) 대통령과 관련된 부패 스캔들에 대한 대응으로 촉발되었습니다.
운동의 핵심 목표는 콜로르 대통령 탄핵이었으며, 젊은이들이 국기의 색깔로 얼굴에 페인트를 칠하고 거리로 나선 데서 '그려진 얼굴'이라는 명칭이 붙었습니다.

1992년 플라나우투 궁전 앞 시위에서 얼굴에 페인트를 칠한 시위대
참고로 2013년 7월 브라질에서 버스 요금 인상에 반대해 벌어진 대규모 시위 역시 많은 사람들에게 '2013 카라스 핀타다스'라 불렸습니다.
개요
탄압, 검열, 고문으로 점철된 군사 독재 정권이 끝난 후, 브라질은 제32대 대통령으로 페르난도 콜로르 지 멜루를 선출했습니다.
당시 브라질은 경제의 극심한 불안정으로 초인플레이션이 국가 전체를 휩쓸며 깊은 위기를 겪고 있었습니다.
지칠대로 지친 국민에게 젊고 대중적인 콜로르는 매력적인 지도자로 비쳤고, 그는 1990년 직접 선거에서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습니다.
그러나 젊고 현대적이며 '정직한 마하라자 사냥꾼'(부패 관료 숙청가)이라던 대통령의 인기는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1992년 5월, 그의 동생이 시사 잡지 베자(Veja)와 진행한 인터뷰를 통해 진실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이 인터뷰는 콜로르 대통령과 그의 재정 담당자 파울루 세자르 파리아(Paulo César Faria)가 연루된 부패 스캔들, 이른바 '파리아 스킴(Esquema Faria)'을 폭로했습니다.
이에 따라 대통령이 유령회사가 발행한 수표로 개인 비용을 지불하는 등 공금을 횡령했다는 혐의에 대한 조사가 착수되었습니다.
결국 의회는 대통령의 이미지를 갈수록 더럽히던 혐의들을 규명하기 위해 국정조사특별위원회(CPI)를 열었고, 1992년 8월 콜로르는 파면되어 정치권리마저 박탈당했습니다.
국민적 불만이 폭발 직전까지 고조된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학생들은 1990년대 초 조직적으로 결집해 대통령 퇴진 운동에 나섰습니다.
특히 학생들은 군사 독재 시기 동안 수많은 고문과 죽음, 검열을 견뎌야 했던 세대였다는 점에서 이 운동은 더욱 큰 의미를 지닙니다.
학생들은 전국학생연합(UNE)과 브라질 중고등학생연합(UBES)을 중심으로 결집했으며, 1980년대부터 민주화, 검열 철폐, 부패 근절을 위해 꾸준히 싸워왔습니다.
운동의 전개 과정
1992년 5월 29일, 첫 번째 조직적인 학생 회의가 열렸습니다. 회의의 목적은 국내 정치 상황을 논의하고 구체적인 행동 방침을 합의하는 것이었습니다.
1992년 8월, 점점 더 많은 참여자를 끌어모으던 '그려진 얼굴' 운동은 브라질 정치 부패에 맞선 상징적인 저항의 랜드마크가 되었습니다.
얼굴에 국기 색깔을 칠한 학생들과 분노한 시민들은 8월 11일 상파울루 미술관(MASP) 앞에 대거 모였습니다. 그날 약 1만 명이 참여했습니다.
이어 8월 16일에는 행진이 브라질 각 도시로 확산되었고, 수많은 시민들이 나라의 애도를 상징하는 검은 옷을 입고 거리로 나섰습니다. 이 집회는 '검은 일요일(Domingo Negro)'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검은 일요일'이 탄생하게 된 배경에는 전날 있었던 콜로르의 연설이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행동을 변호하면서, 다음 며칠간 자신을 지지하는 국민들이 국기의 색인 녹색과 노란색 옷을 입어달라고 호소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오히려 그가 범죄자이자 부패한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확증하는 동시에, 국민들의 전반적인 불만을 여실히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시민들은 검은 옷을 입고 거리로 나와 항의했으며, 이 모든 움직임의 중심에는 단 하나의 목표, 즉 콜로르 탄핵의 실현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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