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굴 제국을 영토적 정점으로 끌어올렸지만, 동시에 쇠퇴의 씨앗을 뿌린 황제로 평가받는 아우랑제브 알람기르(Aurangzeb Alamgir). 그가 생전에 백성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지 못했던 배경에는 종교, 경제, 군사, 후계 문제 등 여러 방면의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습니다.
1. 억압적인 종교 정책
- 아우랑제브는 비무슬림에게 지즈야(jizya, 종교 세금)를 부과했는데, 이는 많은 백성들에게 억압적이고 차별적인 조치로 받아들여졌습니다.
- 그는 힌두 사원을 파괴하고 그 자리에 모스크를 건설하여 수많은 힌두교도의 분노를 샀습니다.
- 또한 이슬람 율법에 어긋난다고 판단한 음악, 무용 등 각종 오락 활동을 금지하면서 많은 신하와 백성들을 소외시켰습니다.
- 나아가 힌두교도들에게 이슬람법을 강제로 적용하려 하면서 커다란 반발과 원망을 불러일으켰습니다.
2. 실패한 경제 정책
- 아우랑제브는 상품에 대한 세금과 관세를 대폭 인상하여 일반 백성들의 삶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 여기에 곡물세(갈라-박시), 군사세(미르바크시) 등 새로운 세금까지 잇달아 도입하면서 백성들의 부담은 더욱 가중되었습니다.
- 게다가 끊임없는 정복 전쟁이 제국의 재정 자원을 고갈시켜 경제 불안정과 심각한 물가 상승을 초래했습니다.
3. 잦은 군사적 실패
- 마라타, 아홈, 라지푸트를 상대로 벌인 군사 원정은 대체로 성공하지 못했고, 이는 그의 명성에 타격을 주었으며 무굴 제국의 위상을 크게 약화시켰습니다.
- 특히 장기간의 포위전 끝에도 치토르 요새를 함락하지 못한 일은 그의 권위와 군대의 사기를 크게 떨어뜨렸습니다.
4. 불명확한 후계 문제
- 아우랑제브는 후계 구도를 명확히 정비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고, 그 결과 왕자들 사이에 격렬한 권력 다툼과 내전이 벌어지며 제국은 깊은 혼란에 빠졌습니다.
결론
결국 아우랑제브의 낮은 인기는 억압적인 종교 정책, 실패한 경제 운영, 잦은 군사적 실패, 그리고 후계 문제에 대한 잘못된 판단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습니다. 그의 통치는 무굴 제국이 이후 서서히 쇠퇴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