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메리카의 역사

카시아스 공작: 브라질 육군의 아버지가 된 평생 군인

루이스 알베스 지 리마 이 실바 원수, 즉 카시아스 공작(Duque de Caxias)은 1803년 8월 25일 리우데자네이루의 포르투 에스트렐라에서 태어나 1880년 5월 7일 발렌사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직업 군인으로서 그는 19세기 브라질에서 벌어진 거의 모든 분쟁에 참전했습니다. 바이아의 독립 전쟁에 참여했고, 섭정 시기 히우그란지두술과 마라냥에서 일어난 반란 진압에 나섰으며, 시스플라티나 전쟁에도 복무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파라과이 전쟁에서는 브라질군 전체를 지휘했습니다. 더불어 제국 상원의원, 육군부 장관, 각료평의회 의장을 역임하며 군인을 넘어 정치가로서도 큰 발자취를 남겼습니다.

1923년에는 그의 생일인 8월 25일을 기념하는 '병사의 날'이 제정되었고, 1962년에는 브라질 육군의 수호자(파트론)로 공식 선정되었습니다.

카시아스 공작: 브라질 육군의 아버지가 된 평생 군인

카시아스 공작의 생애

루이스 알베스 지 리마 이 실바는 아버지, 삼촌, 할아버지가 모두 군인이었던 명문 군인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 역시 정치가로서 첫 번째 임시 삼인 섭정회에 합류했으며, 이후 제국 상원의원이 되었습니다.

현재 리우데자네이루 타쿠라 지구에 해당하는 포르투 에스트렐라에서 태어난 카시아스는 다섯 살에 이미 사관후보생이 되었습니다. 이는 당시 장교 자녀들에게 흔히 볼 수 있는 관행이었습니다.

그는 왕립 포병·요새화·설계 아카데미에 입학하여 1820년 중위로 졸업했습니다. 2년 후 도 페드루가 브라질의 포르투갈로부터 독립을 선언하자, 바이아에 주둔하던 포르투갈군이 수도 살바도르를 포위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이에 맞서기 위해 도 페드루 1세는 자신이 직접 선발한 장교들로 구성된 '황제 대대'를 창설했습니다. 카시아스는 이 대대에 합류해 전투 과정에서 세 차례의 공격에 참여했습니다.

바이아에서 돌아온 후 그는 평생 가장 자랑스럽게 여긴 칭호인 '독립 참전 용사(Veterano da Independência)'를 받게 됩니다.

이후 그는 시스플라티나 전쟁(1825~1828)에 참전했습니다. 이 전쟁은 브라질과 아르헨티나가 오늘날 우루과이에 해당하는 영토를 두고 벌인 다툼이었습니다.

도 페드루 1세가 브라질 왕위와 포르투갈 왕위 사이에서 고민에 빠졌을 때, 카시아스는 황제에게 충성을 맹세했습니다. 그러나 황제는 결국 다섯 살 난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물러납니다. 이후 카시아스는 국민방위대의 모체가 된 성스러운 대대(Sagrado Batalhão)를 지휘하게 되었습니다.

섭정 시기 동안 카시아스는 발리아다 전쟁(1838~1841)과 파루필랴 전쟁(1835~1845) 등 여러 내전에 참전했습니다.

발리아다에서의 공로로 1841년 7월 18일 준장으로 승진했고, 이어 남작 작위를 받았습니다. 특히 그는 귀족 칭호에 들어갈 지명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었던 유일한 브라질인이었는데, 발리아다의 마지막 전투가 벌어진 마라냥 주의 도시 이름인 '카시아스'를 택했습니다.

카시아스와 파라과이 전쟁

1866년, 카시아스는 파라과이 전쟁(1864~1870)에서 싸우는 연합군의 총사령관으로 임명되었습니다.

이토로로 전투에서 브라질군은 좁은 교량을 건너야만 진격할 수 있는 절체절명의 상황에 놓였습니다. 전투 도중 카시아스는 부하들을 향해 "브라질 사람들은 나를 따르라!"라고 외치며 그들의 사기를 북돋았습니다. 결국 연합군은 진격에 성공했고, 파라과이군은 진지를 내주고 물러났습니다.

카시아스는 군대를 파라과이의 수도 아순시온까지 진격시켜 연합국의 승리를 확정지었습니다.

파라과이 전쟁에서의 헌신적인 공로를 인정받아 그는 공작 작위를 받게 되었으며, 브라질 제2제정 시기에 이러한 최상급 귀족 작위를 받은 유일한 인물로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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