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한 오해: 쿠바 미사일 위기와 먼로 독트린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 존 F. 케네디(JFK) 대통령이 먼로 독트린(Monroe Doctrine)을 근거로 소련에 맞섰다고 알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케네디 행정부는 이 위기에서 먼로 독트린을 근거로 삼지 않았습니다.
케네디가 실제로 활용한 것: 리오 조약
쿠바 미사일 위기에서 케네디가 선택한 법적·외교적 근거는 바로 리오 조약(Rio Pact), 즉 '미주 상호 원조 조약(Inter-American Treaty of Reciprocal Assistance)'이었습니다. 이 조약은 미국과 여러 라틴아메리카 국가 간에 체결된 지역 안보 조약입니다.
리오 조약은 1947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체결되었으며, 회원국 중 하나가 외부 세력의 공격을 받으면 이를 모든 회원국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하고 집단적으로 대응한다는 원칙을 담고 있습니다. 케네디 행정부는 이 조약을 통해 미주 지역 공동체의 합의라는 정당성을 확보하며 소련의 미사일 배치에 대응할 수 있었습니다.
먼로 독트린 대신 리오 조약을 택한 이유
먼로 독트린은 1823년 제임스 먼로 대통령이 선언한 일방적인 미국의 정책 성명으로, 국제법적 구속력이 없다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반면 리오 조약은 다자간 조약이었기 때문에, 미국의 단독 판단이 아니라 미주 여러 나라의 공식적인 동의에 기반한 대응이라는 점에서 훨씬 강력한 정당성을 제공했습니다.
냉전 시대 국제 여론 속에서 이러한 선택은 미국이 지역 내 동맹국들과 연대해 행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외교적 무기가 되었습니다. 결국 케네디의 리오 조약 활용은 먼로 독트린이라는 상징적 유산을 현대적인 다자 안보 체계로 대체한 사례로 평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