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초반까지 공식적인 중립 정책을 유지하며 유럽과 아시아의 전쟁에 직접 개입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1941년 12월, 불과 며칠 사이에 연달아 일어난 두 가지 사건이 미국의 입장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고, 이 나라를 세계 대전의 핵심 교전국으로 만들었습니다.
첫 번째 계기: 진주만 기습 공격
1941년 12월 7일 아침, 일본 제국 해군은 하와이 오아후섬의 진주만 해군 기지를 대규모로 기습했습니다. 이 공격으로 전함 8척이 침몰하거나 크게 손상되었고, 항공기 수백 대가 파괴되었으며, 2,400명이 넘는 미국인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은 다음 날 의회 연설에서 12월 7일을 역사에 치욕으로 남을 날이라고 규정했습니다. 미국 의회는 신속하게 대응하여 12월 8일 일본에 선전포고를 했으며, 진주만 공격은 미국 여론을 순식간에 전쟁 지지 쪽으로 결집시키는 결정타가 되었습니다.
두 번째 계기: 독일의 선전포고
미국이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자, 아돌프 히틀러가 이끄는 나치 독일은 1941년 12월 11일 미국에 먼저 선전포고를 했습니다. 이는 일본과 독일·이탈리아 사이의 군사 동맹인 삼국 동맹(추축 동맹)의 의무에 따른 조치였습니다.
독일의 이러한 결정은 오히려 루스벨트 행정부에 명분을 제공했습니다. 미국은 곧바로 독일과 이탈리아에 맞서 선전포고를 하며, 유럽 전선과 태평양 전선 모두에서 본격적인 참전 체제에 돌입하게 되었습니다.
두 사건이 남긴 의미
요약하자면, 미국의 제2차 세계대전 참전은 ① 1941년 12월 7일 일본 제국 해군의 진주만 공격과 ② 12월 11일 독일의 선전포고라는 두 가지 사건에 의해 이루어졌습니다. 진주만 공격이 미국 국내 여론을 전쟁으로 이끌었다면, 독일의 선전포고는 미국이 유럽 전선까지 완전히 개입하는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이처럼 두 사건은 서로 맞물리며 미국을 연합국 진영의 중심으로 자리매김하게 만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