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메리카의 역사

마리 앙투아네트의 아이들은 프랑스 혁명에서 살아남았을까?

마리 앙투아네트는 프랑스 국왕 루이 16세와의 사이에서 네 명의 자녀를 낳았습니다. 그러나 프랑스 혁명이라는 격변기 속에서 이 아이들의 운명은 처참했고, 성인까지 살아남은 이는 단 한 명뿐이었습니다.

루이 17세, 10세에 요절한 도팽

루이샤를(1785~1795)은 원래 차남이었지만, 형 루이조제프가 일곱 살에 요절하면서 도팽(왕세자)의 지위를 물려받았습니다. 혁명이 발발하자 그는 부모와 누나와 함께 파리의 탕플 감옥에 유폐되었습니다. 1793년, 그는 아버지 루이 16세와 어머니 마리 앙투아네트가 차례로 처형되는 비극을 목격해야만 했습니다.

이후 홀로 남겨진 루이샤를은 열악한 환경 속에 방치되었고,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어 1795년 불과 10살의 나이로 감옥에서 생을 마쳤습니다. 그는 정식으로 즉위한 적은 없지만 왕위 계승권자였던 까닭에 역사적으로 '루이 17세'로 불립니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딸, 마리 테레즈

장녀 마리 테레즈 샤를로트(1778~1851)는 가족 중 유일하게 혁명기를 살아남았습니다. 그녀는 1795년 감옥에서 석방된 뒤 모친의 고향인 오스트리아로 향했으며, 1799년 앙구렘 공작 루이앙투안과 결혼했습니다.

1824년 시아버지 샤를 10세가 즉위하면서 그녀는 왕세자비가 되었고, 1830년 7월 혁명으로 샤를 10세가 퇴위하자 남편은 약 20분간 '루이 19세'라는 칭호로 명목상 국왕이 되기도 했습니다. 마리 테레즈는 1851년 7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부르봉 왕가의 마지막 직계 후손으로 살아갔습니다.

혁명 이전에 요절한 두 아이

나머지 두 아이는 불행히도 어린 시절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장남 루이조제프(1781~1789)는 결핵으로 일곱 살에 요절했고, 막내딸 소피 엘레느 베아트리스(1786~1787)는 태어난 지 약 11개월 만에 숨졌습니다. 이들은 혁명이 일어나기 전에 이미 사망했기 때문에 혁명의 참화를 직접 겪지는 않았습니다.

맺음말

결국 마리 앙투아네트의 네 자녀 중 프랑스 혁명을 살아남은 이는 딸 마리 테레즈 단 한 명뿐입니다. 왕세자 루이샤를은 10세의 어린 나이에 감옥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았고, 나머지 두 아이는 혁명 이전에 요절했습니다. 한 왕가의 몰락이 남긴 이 비극은 오늘날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