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메리카의 역사

조베구아르다(Jovem Guarda): 1960년대 브라질을 뒤흔든 '젊은 근위대'와 브라질 록의 탄생

조베구아르다(Jovem Guarda, '젊은 근위대')는 1965년부터 1968년까지 상파울루의 TV 헤쿠르지(TV Record)에서 방영된 음악 프로그램으로, 호베르투 카를루스(Roberto Carlos), 에라스무 카를루스(Erasmo Carlos), 원데르레아(Wanderléia)가 진행을 맡았습니다.

이 프로그램의 이름은 록 음악을 브라질에 소개한 음악적·미학적 운동 전체를 일컫는 명칭이 되었습니다. 현재도 여러 멤버들이 음악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조베구아르다(Jovem Guarda): 1960년대 브라질을 뒤흔든  젊은 근위대 와 브라질 록의 탄생

프로그램에 출연한 호베르투 카를루스, 원데르레아, 에라스무 카를루스

조베구아르다 프로그램

'조베구아르다'는 1965년 8월 22일 TV 헤쿠르지에서 첫 방송되었으며, 당시 급성장하던 세 명의 가수가 진행을 맡았습니다. 호베르투 카를루스는 이미 1963년 바비 대린(Bobby Darin)과 DJ 머리 더 K(Murray the K)의 'Splish Splash'를 에라스무 카를루스가 브라질식으로 번안한 곡으로 큰 인기를 얻은 바 있었습니다. 한편 원데르레아는 여러 라디오 노래 경연 대회에서 우승했고, 1962년 첫 싱글을 발표했습니다.

녹화는 상파울루 콘솔라상 거리에 있는 테아트루 헤쿠르지(Teatro Record)에서 생방송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리우데자네이루에서는 카를루스 망가(Carlos Manga)가 연출한 주간 버전이 TV 리우(TV Rio)를 통해 방영되었습니다. 위성 재송신이 없던 시절이라 나머지 지역 시청자들은 비디오테이프 방송을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1시간 동안 트리오는 자신들의 히트곡을 부르고 게스트들을 즐겁게 했습니다. 프로그램은 빠르게 시청률 선두에 올랐고, 극장을 가득 채운 팬들 사이에서 열광적인 열풍을 일으켰습니다.

반항적인 태도, 신나는 리듬, 그리고 10대 청소년들이 속속들이 공감할 수 있는 순수하지만 정직한 가사야말로 프로그램 성공의 열쇠였습니다.

조베구아르다의 역사적 배경

1960년대 브라질 음악계는 보사노바를 확립했습니다. 정교한 가사, 세련된 화성, 그리고 재즈와 삼바를 혼합한 새로운 리듬이 그 특징이었으며, 리우데자네이루 남부 지역의 젊은이들이 브라질 음악 지형을 새롭게 그려갔습니다.

그러나 같은 도시의 변두리에서는 엘비스 프리슬리, 비틀즈, 롤링 스톤스의 록에 더 깊이 공감하는 또 다른 세대의 젊은이들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조베구아르다는 노래 주제와 단순한 멜로디 구조 때문에 지식인층 일부에게는 경박하다고 평가받았습니다.

1964년 브라질에 군사 독재정권이 들어서면서부터 조베구아르다 멤버들은 군부 정권에 맞서 싸우는 이들에게 '현실 도피적이고 무관심한 집단'으로 낙인찍히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바로 이러한 시대적 맥락 속에서 조베구아르다가 제시한 록과 발라드는 복잡하고 무거웠던 60년대를 잠시 벗어날 수 있는 완벽한 해답이었습니다.

냉전이나 베트남 전쟁을 걱정하는 대신, 시청자들은 골든 보이스(Golden Boys)가 부른 '군중 속의 누군가(Alguém na multidão)'에 맞춰 신나게 춤추는 것을 훨씬 더 좋아했습니다.

조베구아르다(Jovem Guarda): 1960년대 브라질을 뒤흔든  젊은 근위대 와 브라질 록의 탄생

조베구아르다 쇼에 출연하는 골든 보이스

조베구아르다의 노래

조베구아르다의 초기 곡들은 미국과 영국의 히트곡을 번안한 것이 많았습니다. 비틀즈의 'Girl'을 번안한 '메우 벵(Meu Bem)'은 로니 폰(Ronnie Von)의 목소리로 큰 히트를 기록했고, 닐 새더카(Neil Sedaka)의 'Stupid Cupid' 역시 셀리 캄펠루(Celly Campello)가 '바보 큐피드'라는 제목으로 불러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동시에 호베르투 카를루스와 에라스무 카를루스는 앵글로색슨 록의 노선을 따르는 자작곡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가사는 연애, 사랑의 추구, 자동차, 자유에 관한 내용이 주를 이뤘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호베르투 카를루스의 '모두 지옥으로 가버려라(Quero que vá tudo pro inferno)'(1965)와 두 사람이 함께 만든 '페스타 지 아롬바(Festa de arromba)'(1965)를 꼽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감성적인 발라드를 위한 공간도 충분했습니다. 릴리안 크냐프(Lilian Knapp)와 헤나투 바호스(Renato Barros)가 만든 '돌려줘(Devolva-me)'는 레누 이 릴리안(Leno & Lilian)이 불러 히트했으며, 마르티냐(Martinha)가 1966년에 작곡하고 직접 부른 '그래도 너를 사랑해(Eu te amo mesmo assim)'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조베구아르다의 미학

조베구아르다는 10대 청소년들의 행동 방식에 깊은 흔적을 남기며 새로운 유행과 은어를 만들어냈습니다. 다운 코트처럼 고급스러운 옷차림, 과감한 색감, 그리고 여성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아이템이 된 미니스커트가 크게 유행했습니다. 머리는 비틀즈처럼 길게 기르고, 태도는 최대한 느긋하고 여유롭게 유지하는 것이 미덕이었습니다.

일상 언어에도 '핫하네, 살아?(é uma brasa, mora?)', '깔끔한 바(barra limpa)', '확실한 얘기(papo firme)' 같은 표현들이 빠르게 퍼져나갔습니다. 이 표현들은 모두 프로그램에서 선보인 노래 가사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조베구아르다의 유산

1968년 TV 헤쿠르지에서 프로그램이 종영된 후, 조베구아르다 멤버들은 각자 다른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이 운동은 트로피칼리스무(Tropicalismo), 세르타네주(sertanejo), 그리고 국내 록이라는 세 개의 직접적인 후계자를 낳았다고 평가됩니다.

트로피칼리스무는 전기 악기와 브라질 전통의 어쿠스틱 악기를 결합했습니다. 카에타누 벨로주(Caetano Veloso)와 지우베르투 지우(Gilberto Gil)는 호베르투 카를루스와 그의 동료들에게 어떤 편견도 갖지 않고 적극적으로 다가갔습니다. 이 우정 덕분에 카에타누가 런던으로 망명해 있던 시절, 호베르투 카를루스는 아름다운 곡 '당신의 곱슬머리 아래에서'를 선물하기도 했습니다.

세르타네주(브라질 컨트리 음악)는 조베구아르다 가사에 담긴 낭만주의를 그대로 계승했습니다. 세르지우 헤이스(Sérgio Reis)는 성공적인 세르타네주 가수로 자리매김했고, 싱어송라이터 마르티냐는 치타오진유 이 조호호(Chitãozinho & Xororó) 같은 유명 듀오를 위해 곡을 쓰는 작가로 큰 인기를 누렸습니다.

그 후 수십 년 동안에도 여러 국내 음악 스타들이 조베구아르다의 노래를 계속해서 리메이크했습니다. 밴드 스캉크(Skank)는 1994년 호베르투 카를루스의 '금연(É proibido fumar)'(1964)을, 마리자 모치(Marisa Monte)는 2016년 호베르투 카를루스의 '이게 무슨 소용이야?(De que vale tudo isso?)'(1967)를 각각 녹음했습니다.

조베구아르다 대표 가수들

호베르투 카를루스, 에라스무 카를루스, 원데르레아, 골든 보이스, 로니 폰, 오스 VIPs(Os Vips), 마르티냐, 셀리 캄펠루, 레누 이 릴리안, 헤나투 이 세우스 블루 캅스(Renato e Seus Blue Caps), 더 피버스(The Fevers), 제리 아드리아니(Jerry Adriani), 호제마리(Rosemary) 등이 대표적인 이름입니다.

재미있는 사실

  • 프로그램 이름은 소련의 지도자 레닌의 말에서 따왔습니다. "미래는 젊은 근위대의 것이다. 구근위대는 이미 낙후되었기 때문이다."
  • 이 운동은 '예예예(iê-iê-iê)'라고도 불렸는데, 이는 비틀즈가 'She Loves You'에서 부른 'yeah-yeah-yeah'를 브라질식으로 변형한 표현입니다.
  • 조베구아르다는 군부 정부의 호의적인 시선을 받았지만, 호베르투와 에라스무 카를루스는 작품이 검열당하지 않도록 은유적 표현을 사용해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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