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카 제국을 정복한 스페인의 정복자(conquistador) 프란시스코 피사로. 그는 어디에서 태어났고, 어떤 여정을 거쳐 신대륙의 역사를 바꾼 인물이 되었을까요?
프란시스코 피사로의 출생과 가족
프란시스코 피사로는 1476년경 스페인 남서부 엑스트레마두라 지방의 트루히요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 곤살로 피사로 로드리게스 데 아길라르는 보병 대령이자 지역 관리였으며, 어머니 프란시스카 곤잘레스 마테오스는 트루히요 시장의 딸이었습니다.
피사로에게는 에르난도, 후안, 곤살로라는 세 명의 형제와 이사벨, 프란시스카라는 두 명의 자매가 있었습니다. 형제들은 훗날 함께 신대륙 원정에 참여하며 피사로의 정복 사업에 큰 힘이 되어 주었습니다.
신대륙으로 떠난 항해
1502년, 피사로는 히스파니올라 섬의 새 총독으로 부임한 니콜라스 데 오반도와 함께 신대륙으로 건너갔습니다. 그는 병사로 복무하며 경력을 쌓았고, 점차 대장의 자리까지 올랐습니다.
1513년에는 바스코 누녜스 데 발보아가 이끄는 파나마 지협 횡단 원정에 동행하여, 유럽인으로서는 처음으로 태평양을 발견하는 역사적 순간에 함께했습니다.
페루 정복과 잉카 제국의 몰락
1522년, 피사로는 스페인으로 돌아와 카를로스 5세 국왕으로부터 페루 정복을 위한 왕실 허가장을 받아냈습니다. 그는 원정대를 꾸려 1531년 페루로 출항했습니다.
1532년, 피사로는 잉카 제국의 황제 아타우알파를 기습적으로 포획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는 황제의 석방 조건으로 금과 은으로 가득 찬 방 하나를 몸값으로 요구하여 받아냈지만, 아타우알파는 결국 스페인인들에 의해 처형되고 말았습니다. 이 사건은 화려한 문명이었던 잉카 제국이 붕괴의 길로 들어서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리마의 건설과 비극적 최후
1535년, 피사로는 스페인 식민지 페루의 수도가 될 도시 리마를 직접 건설했습니다. 그는 이후 페루 총독으로서 식민지를 통치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권력과 부는 동료 정복자들의 질투를 샀고, 1541년 피사로는 스페인 정복자 무리의 암살로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신대륙 최고의 권력자로 군림했던 그의 끝은, 정복 시대가 남긴 잔혹한 권력 다툼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으로 남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