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역사상 최초의 영구 영국 식민지였던 버지니아는 현대의 보통선거 개념과는 거리가 먼, 엄격하게 제한된 투표 제도를 운영했습니다. 1619년 북아메리카 최초의 입법 의회인 버지니아 하원(Burgesses)이 구성되면서 식민지 주민의 정치 참여가 시작되었지만, 그 문은 극소수에게만 열려 있었습니다.
투표 자격: 재산, 신분, 성별, 인종
재산 소유 요건
가장 핵심적인 기준은 재산 소유 여부였습니다. 토지나 일정 규모 이상의 재산을 보유한 사람만 선거에 참여할 수 있었으며, 요구되는 재산의 기준은 시대에 따라 변동했지만 대체로 상당한 수준이었습니다. 특히 1670년에는 법적으로 토지 소유자(freeholder)만 투표할 수 있도록 제한이 명문화되었습니다.
자유 신분의 백인 남성
재산 요건 외에도 투표자는 반드시 자유 신분이어야 했고, 백인 남성으로 한정되었습니다. 따라서 여성, 아프리카계 노예, 계약 하인(indentured servants), 원주민 등 인구의 절대 다수는 정치 과정에서 처음부터 배제되었습니다.
배제된 다수, 통치한 소수
이러한 제도 때문에 실제로 선거에 참여할 수 있는 사람은 식민지 인구의 극히 일부에 불과했습니다. 토지 없는 백인 빈농조차 투표권을 행사할 수 없었으며, 정치 권력은 부유한 농장주(플랜터) 계층에 집중되었습니다. 이는 초기 미국의 정치 질서가 처음부터 평등했던 것이 아니라, 재산과 신분에 기반한 소수 지배 체제에서 출발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시간에 따른 변화
흥미롭게도 버지니아의 투표 요건은 고정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식민지 초기에는 비교적 관대한 편이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엄격해졌고, 재산 기준은 경제 상황과 지배 계층의 이해관계에 따라 조정되었습니다. 이러한 재산 기반 참정권은 미국 독립 이후에도 여러 주에서 한동안 유지되다가, 19세기에 들어서야 점진적으로 폐지되며 보통선거의 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