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메리카의 역사

로버트 E. 리 장군은 왜 버지니아와 피터스버그를 떠나야 했을까?

미국 남북전쟁의 종막을 고한 결정적 순간은 1865년 봄에 찾아왔습니다. 로버트 E. 리(Robert E. Lee) 장군이 버지니아와 피터스버그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근본적인 이유는 북군이 남부연합군의 보급선을 차단하고 병력을 완전히 포위했기 때문입니다.

그랜트의 총공세, 남군은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1865년 봄, 율리시스 S. 그랜트(Ulysses S. Grant) 중장이 지휘하는 북군은 북버지니아군이라 불리는 리 장군의 부대를 상대로 일련의 대규모 공세를 개시했습니다. 이 공세는 성공적으로 진행되어 남군을 버지니아의 피터스버그와 리치먼드 방어선까지 밀어붙였습니다.

사실 피터스버그에서의 대치는 1864년 6월부터 약 10개월간 이어진 격오지 참호전이었습니다. 그러나 1865년 4월 초 다섯 포크스(Five Forks) 전투에서 남군이 패배하면서 서남쪽 방어선이 무너졌고, 이는 곧 두 도시를 더 이상 지킬 수 없다는 신호였습니다.

굶주림과 탄약 부족, 함락은 시간문제였다

1865년 4월 초, 북군은 피터스버그와 리치먼드를 완전히 포위한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리 장군의 군대는 식량이 바닥나고 탄약마저 고갈된 처지였습니다. 병사들은 며칠씩 굶은 채 전선을 지켜야 했고, 후방에서 물자를 실어 나르던 철도마저 북군에 의해 끊긴 상황이었습니다.

결국 4월 2일 밤 리 장군은 리치먼드와 피터스버그를 포기했습니다. 그는 서쪽으로 퇴각해 북카롤라이나의 조지프 E. 존스턴(Joseph E. Johnston) 장군 부대와 합류하여 저항을 이어가려 했으나, 아포매톡스 강 유역에서 북군에게 퇴로가 차단당해 사실상 포위당하고 말았습니다.

애포매톡스 코트하우스의 항복

1865년 4월 9일, 리 장군은 애포매톡스 코트하우스(Appomattox Court House)에서 그랜트에게 정식으로 항복했습니다. 이는 미국 남북전쟁의 사실상 종식을 알리는 역사적 순간이었습니다.

버지니아와 피터스버그를 떠나야 했던 리 장군의 결정은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군대가 이미 패배했으며 항복이 불가피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병사들이 완전히 소멸하기보다는 최소한의 생명과 명예를 지키길 바랐습니다.

애포매톡스에서의 항복 협상 덕분에 리 장군은 관대한 조건을 받아낼 수 있었습니다. 남군 장병들은 무기를 넘기는 대신 개인 소지품과 말·노새를 가정으로 가져갈 수 있었고, 전쟁이 끝날 때까지 집에 돌아가 평화롭게 지내면 사면된다는 약속까지 받았습니다. 그랜트의 이러한 관용은 분열된 국가를 다시 하나로 묶는 데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