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메리카의 역사

인구 조사 투표

인구조사 투표 또는 참정권 특정 경제적 요건을 충족하는 특정 집단에게 부여되는 투표권입니다.

원산지

인구 조사 투표는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을 장악한 자유주의 반란과 함께 앙시앵 레짐(Ancien Régime) 말기에 나타났습니다. 계몽주의와 자유주의 사상에 영감을 받은 부르주아지는 대표 선출을 통해 더 많은 정치적 참여를 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왕과 귀족들은 권력분립을 우호적으로 보지 않았다. 그러나 새로운 사회적 주체를 정치적 결정에 포함시켜야 할 필요성으로 인해 투표권은 소수의 인구에게 부여되었습니다.

따라서 인구 조사 투표의 주요 특징은 선출된 소유자 계층을 대상으로 하고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법률을 만드는 것입니다. 인구 조사 투표는 1787년 미국 헌법과 1791년 프랑스 헌법에 채택되었습니다.

계몽주의와 자유주의는 모든 시민의 권리를 보장한다는 점에서 민주적이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종종 그들의 생각은 여성, 어린이, 농민, 도시 노동자를 제외한 인구의 특권층만을 겨냥한 것이었습니다.

계몽주의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세요.

브라질 인구조사 투표

1824년 브라질 제국의 정치 헌법은 남성 인구에 대한 인구 조사 투표권을 보장했습니다.

25세 이상, 연간 소득이 10만 레이(réis) 이상인 자유인만이 예비선거에 투표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 선거에서는 하원의원과 상원의원에게 투표할 사람이 선정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예비선거에 출마하려면 수입이 20만 레이로 늘어나고 자유민은 제외됩니다. 마지막으로 하원의원과 상원의원 후보자는 소득이 40만 레이 이상이어야 하며 브라질인과 가톨릭 신자여야 했습니다.

요즘 많은 비판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다른 헌법과 비교해보면 브라질은 당시 서구세계의 사고방식과 일치하고 있었습니다.

1824년 헌법에 대해 자세히 읽어보세요.

브라질 공화국에서 최초로 제정된 1891년 헌법은 인구 조사 투표를 폐지하고 글을 읽을 줄 아는 브라질 남성에게만 투표를 허용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공화당의 마그나 카르타 역시 인구의 상당 부분이 문맹이고 여성이었기 때문에 투표권을 제한했습니다.

제1공화국에서는 사기 행위와 대령의 지방 권력이 보토 데 카브레스토(Voto de Cabresto)라는 관행을 확립했습니다.

인구 조사 투표

1891년 헌법의 첫 페이지

인구조사 투표 x 보편적 투표

인구 조사 투표는 보편적 투표에 반대됩니다.

보통선거는 성별, 종교, 소득, 교육에 따른 차별 없이 한 국가의 모든 시민이 투표할 수 있는 권리입니다. 유일한 제한은 해당 국가의 법률에 따른 법적 연령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1932년 브라질에서는 여성 투표가 승인되었지만 문맹자, 군인, 종교인은 투표할 수 없었습니다.

브라질에서는 1988년 헌법에 의해 보통선거가 보장되었습니다.

자세히 알아보기:

  • 브라질 헌법
  • 정치란 무엇인가?
  • 브라질의 여성 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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