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메리카의 역사

존 캐벗 이후 80년간 영국은 정말 북미 식민지화를 시도하지 않았을까?

1497년 존 캐벗(John Cabot)이 북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한 이후 영국이 약 80년간 식민지 건설을 전혀 시도하지 않았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릅니다. 실제로 영국은 이 기간 동안 여러 차례 북미 식민지화를 시도했으며, 다만 그 시도들이 성공하지 못했을 뿐입니다.

잊혀진 초기 시도들

캐벗 자신도 1498년 두 번째 항해를 통해 북미에 다시 식민지를 세우려 했으나, 함대가 항해 중 소식을 잃으면서 계획은 좌절되었습니다. 이후 헨리 8세는 유럽 대륙의 정치와 종교 개혁에 몰두하면서 해외 확장에 큰 비중을 두지 않았지만, 민간 차원의 탐사와 시도는 계속 이어졌습니다.

1576년부터 1578년까지 마틴 프로비서(Martin Frobisher)는 세 차례에 걸쳐 북서항로 개척과 광물 채굴을 목표로 캐나다 북부 지역을 탐사했습니다. 1583년에는 험프리 길버트(Humphrey Gilbert) 경이 뉴펀들랜드를 공식적으로 영국령으로 선포하며 최초의 북미 영토 점유를 선언했습니다.

로어노크: 실패한 첫 번째 식민지

1585년과 1587년에는 월터 롤리(Walter Raleigh) 경의 후원 아래 노스캐롤라이나 로어노크 섬에 두 차례 식민지가 건설되었습니다. 그러나 첫 번째 시도는 보급 문제로 귀환했고, 두 번째 시도에서 파견된 100여 명의 정착민들은 1590년 구조선이 도착했을 때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습니다. 이른바 '실종된 식민지'로 불리는 이 사건은 오늘날까지도 역사학자들의 관심을 끄는 미스터리로 남아 있습니다.

그럼에도 성공까지 오래 걸린 이유

여러 차례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영국의 본격적인 식민지 건설이 1607년 제임스타운에서야 성공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당시 스페인은 강력한 해군력과 풍부한 자본으로 중남미를 장악한 상태였고, 영국은 국력과 재정 면에서 상대적으로 열세였습니다. 또한 왕실의 직접적인 후원이 부족해 대부분의 시도가 민간 투자자와 모험가들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으며, 종교 분쟁과 유럽 내 전쟁이 국가적 에너지를 소모하게 만들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영국이 캐벗 이후 80년간 북미를 외면했다기보다는, 지속적으로 시도하되 환경과 조건이 성숙하지 않아 성공하지 못했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그리고 그 긴 준비 기간 끝에 1607년 제임스타운이 설립되면서 영국은 마침내 북미 식민지 제국의 초석을 놓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