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라디오 런던, 라디오 파리, 라디오 비시: 전파 전쟁의 역사

1940년 6월 프랑스가 독일에 패배한 후, 라디오는 레지스탕스의 라디오 런던(Radio London)과 독일 점령군 및 협력 정권의 라디오 파리(Radio-Paris), 라디오 비시(Radio Vichy)가 맞붙는 '전파 전쟁'의 무기가 되었습니다. 1940년 6월 18일, 드골 장군이 BBC를 통해 유명한 호소문을 발표하며 저항을 촉구한 것이 그 시작이었습니다. 곧 수많은 프랑스인이 BBC의 프랑스어 방송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고, 모리스 슈만(Maurice Schumann)과 피에르 다크(Pierre Dac) 등 '프랑스의 목소리'로 불린 이들의 방송이 희망을 전했습니다.

라디오 런던: 자유 프랑스의 목소리

1940년 6월 22일 휴전 협정 체결로 프랑스 영토의 일부가 점령당하고 프랑스 라디오 지형이 재편되었습니다. 드골 장군의 6월 18일 호소에 이어, 런던과 식민지 곳곳에서 레지스탕스를 지원하고 사기를 북돋우기 위한 방송이 재정비되었습니다.

라디오 런던은 1940년 6월 개국해 프랑스인이 프랑스인에게(Les Français parlent aux Français), 조국에 바치는 경의(Hommage et Patrie), 프랑스의 전령들(Les Courriers de France), 소학교(La Petite Académie) 등 17개의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편성했습니다. 1942년 1월에는 프랑크 바우어(Franck Bauer)가 재즈 전문 프로그램 라디오 스윙 클럽(Radio Swing Club)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BBC 합류 전 선전 요원, 첩보망 책임자, 미국 내 간첩 등 다채로운 이력을 지닌 바우어는 1940년 6월 패배 후 영국으로 건너가 자유 프랑스군에 합류했고, 해군 위원직을 사양하며 라디오 런던에 합류해 1941년 3월부터 '프랑스인이 프랑스인에게' 프로그램의 진행자가 되었습니다.

'프랑스인이 프랑스인에게' – 저항의 구심점

드골의 연설 이튿날인 1940년 6월 19일 시작된 프랑스인이 프랑스인에게는 이곳은 프랑스다(Ici la France)라는 이름으로 7월 14일 혁명 기념일 오후 8시 15분, 상징적인 날에 본격 출범했습니다. 자크 뒤센(Jacques Duchesnes), 장 오베를레(Jean Oberlé), 피에르 르페브르(Pierre Lefèvre)가 중심이 되어 1944년까지 프로그램을 이끌었습니다. 바우어는 자신의 저서에서 모리스 슈만, 피에르 부르당(피에르 마이요), 자크 뒤센(미셸 생드니), 장 오베를레, 피에르 르페브르 등 약 20명의 기자·진행자의 활약과 인연을 상세히 기록했습니다.

라디오 런던은 오락과 정보 제공을 넘어 협력 정권과 강제노동동원령(STO)을 신랄히 비판했고, 청취자 편지 소개, 암호문 전달, 심리전 수행 등 다층적 역할을 했습니다. 거북이 작전(Campagne de la Tortue)은 프랑스 노동자들에게 작업 속도를 늦출 것을 독려했고, 1941년의 V자 캠페인(Campagne du V)은 벽과 차량에 승리의 'V' 표시를 그리게 했습니다.

식민지 라디오의 확대

점차 식민지 라디오의 역할이 커졌습니다. 1940년 10월 드골의 요청으로 개국한 라디오 브라자빌(Radio Brazzaville)은 1941년 5월 11일 시위 조직에 기여했고, 라디오 알제(Radio Alger)는 양질의 프로그램을 제공했습니다. 바우어는 1943년 6월부터 1944년 5월까지 라디오 타나나리브(Radio Tananarive)(마다가스카르)에서 시사, 문학, 음악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활약했습니다.

1944년 6월 5일 BBC가 송출한 "가을 바이올린의 긴 흐느낌이 단조로운 나른함으로 내 마음을 아프게 한다"라는 베를렌의 시구는 이튿날 노르망디 상륙 작전의 개시를 알리는 신호였습니다.

라디오 파리와 비시의 선전 공작

라디오 비시와 라디오 파리를 통해 괴벨스 장관이 주도한 독일의 선전 공세가 본격화되었습니다. 점령 당국은 자유 프랑스의 라디오를 차단하기 위해 검열, 전파 방해(재밍) 시도, 라디오 수신기 압수, 반유대주의 방송 등 수단을 총동원했습니다. 1940년 10월에는 BBC 청취를 금지하고 벌금형과 징역형으로 처벌했습니다. 1940년 8월 8일 개국한 라디오 비시는 주 20시간의 오락, 일일 16시간의 뉴스, 가정·음악·요리·문화 프로그램과 더불어 선전 방송을 편성했습니다.

라디오 런던, 라디오 파리, 라디오 비시: 전파 전쟁의 역사

툴루즈, 몽펠리에, 님, 아장(Agen), 리옹, 라디오 메디테라네 등 민간 라디오들도 비시 정권의 보조금에 의존해 월 60시간의 선전 방송을 의무적으로 송출해야 했습니다. BBC의 소학교에 대항해 독일은 어린이를 위한 입문서(Le Petit Catéchisme)를 발간하며 "딩골주의(Dégaullisme)" 같은 멸칭을 만들어냈는데, 이를 "현실과 완전히 단절된 광열과 공격성을 특징으로 하는 전염병"으로 정의하며 조롱했습니다.

라디오 파리는 선전과 오락을 교묘히 섞어 방대한 음악 프로그램과 협력 선전 방송을 내보냈으며, 자체 교향악단까지 두었습니다. 장 오베를레가 "라디오 파리는 거짓말한다, 라디오 파리는 거짓말한다, 라디오 파리는 독일 것이다"라며 라 쿠카라차 선율에 맞춰 풍자한 구호는 유명합니다. 1944년 8월 18일 파리 해방과 함께 라디오 파리는 방송을 중단했고, 이틀 뒤 마르세유즈 연주와 함께 "여기 프랑스 국민의 방송국이다"라는 새로운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더 알아보기

  • 베르나르 크로셰, 프랑크 바우어와 라디오 런던의 서사시, 우에스트 프랑스 출판사, 2013년 3월
  • 오렐리 뤼노, 라디오 런던, 탕푸스, 2010년